다행多幸 -

박산 2016. 11. 28. 08:45

 

 

 

다행多幸 -

 

사는 게 너무 팍팍해

짜증도 나고 말이야

술을 마셨어

 

자정이 가까운데도

도심은 술꾼들로 득시글거렸지

문득 올려다 본 밤하늘

별은 총총했지만

달은 뭔지 모르게 우울 했어

사정射精한 후의 나른함 같은 게 몰려왔어

 

누군가와 쌍시옷으로 삶을 말하고 싶었지

마누라 붙들고 고주알미주알 떠들긴 싫어

좋은 얘기도 아니잖아

 

영감탱이 소릴 코앞에 둔 친구 놈들

휴대폰 번호들이 사열하듯 쭉 떴지

찌든 냄새가 폴폴 났어

 

이 시간에 받을 놈이 있을까

그 중 잘난 척하고는 담쌓고

아무 때나 눈물 글썽이는

착하디착한 Y를 눌렀지

 

익숙한 트로트 음악이 한참이나 울렸어

자는 줄 알고 끊으려는데

“어디야?

 같이 마시자”

 

중간 접선구역에서 만났지

쩐錢, 마누라, 새끼들, 몸뚱어리 건강,

정치, 대통령, 지구의 평화까지

내겐 가당치 않은 주제를

쌍시옷 섞어 얘기했지만

기억에 남는 건 없어

 

그냥 새벽까지 얘기 들어주고

맞장구쳐 줄 친구 하나 있음에 다행이지

 

(박산 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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