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 두 개

박산 2016. 11. 7. 10:14




콘돔 두 개


소갈머리가 텅텅 빈 나는

흰머리가 뒤죽박죽인 아내와

대구 여행 중이었다


해거름 호숫가

유럽식 거리 카페가 즐비한 뒷길

울긋불긋 너풀거리는 천으로 주차장을 가린 모텔에

고개 숙인 무수리들만 몰래몰래 드나들 것 같은

폭 좁은 옆문으로 들어가니

의외로 청결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프런트 데스크

나름 반듯한 얼굴의 여인이 힐끗 맞으며


- 대실이세요 숙박이세요

  숙박은 만원이 추가됩니다

  10시 이후는 괜찮고요


- 예 만원 더 드리지요


- 어르신들은 조용히 주무셔야 하니

  1층 맨 끝 방을 드리겠습니다


- 아직 어르신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닌데요 _ ……


얼떨결에 받은 세면도구 비닐 팩을

정말 조용한 1층 맨 끝 방에 들어 열었다

칫솔 두 개, 면도기, 세정제, 콘돔 두 개


“우린 콘돔 필요 없는데…”


내 중얼거림에 아내의 추임새가 들렸다


“이런 데 오면 두 개는 필요한 모양이야”


갑자기 양치질이 빡빡 하고 싶었다


(박산 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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