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진 시인 자필 엽서(67년 8월25일 월급날)
아내는 돈을 벌자하고 나는 하던 끝이니 문학을 하자하고 아이들은 당장 밤고구마라도 사내라한다
아내가 있기 이전에는 아이도 없었지만 그대로 문학을 손에 끼고 다녀도 될 것 같았다
그것이 불과 십여년 밖인데 사정이 달라졌다 결국 결론은 이렇게 지우고 말았다
돈은 월급쟁이니 그것으로 벌고 문학은 하던 버릇이니 그대로 내버려 두자고 그리고 아이들은 몇 푼 드는 것
아니니 이것(이십원)으로 때우자고 그렇게 해결 아닌 해결을 짛고 나는 나와서 책을 한 보따리 사고
아내는 시장에 나가서 뱅뱅 돌다가 별 것도 못 사가지고 돌아왔다 (월급날 67.8.25일)
<添言>
이생진 시인께서 1967년 서울 대방동 성남중학교 재직시절 학교에 붙은 교직원 사택, 즉 당신의 자택으로
수취인 역시 당신의 이름으로 보냈던 엽서다.
전화도 변변치 않았던 그 시절, 집안의 가장으로서 돈을 좀 더 벌자하는 아내에게 문학을 열망하는 시인으로서
직접 말하기 어려운 얘기들을 이렇게 소통한 듯하다. 박봉의 시절 시인은, 교사 가장으로서의 부족한 살림살이에
대한 미안함을, 문학으로서의 당신의 열망을 이유로 이해를 구하는 절절한 마음이 읽혀진다.
9월15일, 84세를 일기로 소풍 떠나신 이 편지의 주인공인 '아내' 사모님의 명복을 빌며 혼자 남으신
이생진 선생님의 남은 삶이, 고독에 더 잘 비벼져 더 좋은 시가 생산되어지길 기원해 본다.
{진흠모 111+77}
2016년 10월 28일 7시 (매월 마지막 금요일)
종로구 인사동길 52번지 도로명 인사 14길
‘시/가/연 詩/歌/演 (Tel.720 6244 김영희 이춘우 010 2820 3090/010 7773 1579)
종로→안국동 방향 (종각역부터 700m) 안국동→종로방향 (안국역부터 400m)
(통큰갤러리 미호갤러리 고려서화가 있는 건물 지하)
1. 바람 : 양숙
2. 나뭇잎 : 김효수
3. 그때에도 시를 쓸까 : 낭송 유재호/시 이생진
4. 밤의 하모니 : 김중열
5. 낙엽 : 낭송 허진/시 레미 구르몽
6. 찬바람에 너 또 떠나면 : 권영모
7. 낙엽의 꿈 : 낭송 김경영/시 김소엽
8. 인공지능이 지은 시 : 박산
9. 죽음이 코앞인데 : 이생진 with 담론
* 진흠모 무크지 인사島 3호(2017년 6월 발간 예정) 상시 원고 접수합니다.
주제: '카르페 디엠'
응모자격: 모꼬지 참석자 누구나
장르: 시 수필 잡문 등 제한 없습니다.
마감: 수시 접수 until end of March, 2017
보낼 곳: 양숙 편집인(010 3749 9806) yasoo5721@sen.go.kr
이란 여행 후, 해박한 문화 강론하는 양숙 시인(右)과 진흠모 미인 김명옥님의 히잡 착용 모습
진흠모 111+76
2016년 9월 30일 7시 (매월 마지막 금요일) 스케치
1. 푸른 사랑 : 양숙
오! 바로 당신
비취색 모자의 푸르름을 유리병에 담아 가져왔던
이 세상의 푸르름을 모두 모아 벽타일과 바닥 양탄자에 들여
사랑하는 이의 가슴속에 영원토록 빛나게 했던
푸르르고 지고지순한 사랑 면면히 이어져온 그 사랑
싱그럽고 아름다운 사랑이 바로 여기 모스크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나니
정녕 그대들은 아비틴과 프라랑의 후예
쿠쉬나메 : 1300년 전부터 구전되어오는 페르시아 대서사시 페르시아 마지막 왕자 아비틴이 압제자(쿠쉬)를 피해 신라(바실라)
로 망명. 신라 공주 프라랑과 혼인 페라둔이라는 아들을 낳았음. 그 아들 페라둔이 페르시아를 구한다는 내용. 실제로
아바틴이 프라랑을 생각하며 깎은 돌조각(한그루 나무 사이로 두 마리 새가 있는 모양)이 경주박물관에 있는데(공작문
석) 그것과 같은 모양이 에스파한의 이맘 모스크 정문에 있음.
* 진흠모/ 교사 시인/ 진흠모 편집인
* email :yasoo5721@sen.go.kr
* 9월, 이란 여행을 다녀 온 여행가 양숙 시인의, 위 발표 시 '푸른 사랑'에 얽힌 이란 여행기 강연이 있었습니다
신라와 교류했던 이란의 문명을 영상과 함께 소개했으며 '차라리 먼지 되어 그대의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이란의 대표적 시인인 하페즈와 연결되어 괴테와 바그너에 영향을 준 사실까지 감명 깊고 흥미로운 강의로
동인들에게는 색다른 간접 경험이 유익했습니다.
2. 여인 : 김효수
알량한 자존심 지키느라 제대로 표현 한 번 못하고 관심도 없는 척 아주 태연하게 곁을 지났을 뿐인데
마음은 자꾸 가지 끝에 걸린 감처럼 붉어가고 있다 쭉 빠진 몸매에 머리칼 허리에 찰랑대며 걷던 여인
그래도 남자라고 스쳐 갈 때 곁눈질로 힘끔 보는데 갑자기 놀란 가슴 쉬던 숨조차 멎은 채 쿵쾅거렸다
은은한 향기 풍기며 걷던 여인은 마치 천사 같았다 눈 코 입 선명한 얼굴에 웃음기 가득한 표정이었다
보는 순간 세상에 이렇게 고운 여인도 살고 있구나 혼잣말로 몇 번을 중얼대며 미친 듯이 집에 왔는지
깊은 밤에 어찌 잠은 오지 않고 여인만 떠오르는지 어제도 종일 서서 그랬지만 오늘도 그 길 서성인다
혹시나 멀리서라도 여인의 모습 볼 수 있을까 하여 오늘 볼 수 없으면 내일도 오늘처럼 서성일 것이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까지 가도 속절없이 가는 긴 세월에 강산이 쉬지 않고 변해도
마지막 숨을 쉬는 날까지 길에 서성이다 갈 것이다
* 진흠모/ 시인
3. 소망: 권태원
한 번은 아버지
한 번은 어머니
또 한 번은 누나 형 가족
한 번에 한 사람
한 번에 여러 사람
여러 번에 같은 한 사람
생각하며 절 하네
한 번 절에 구슬 하나
한 사람 한 구슬
108배에 몇 사람 있나
내가 아는 사람 모두
내가 모르는 사람 모두
행복하소서!
* 시를 통해 자아를 성취 하고자 하는 권태원님은 물어물어 용기를 내어 처음 모꼬지를 찾아와
스스로 만들어 온 인쇄물에 자신의 시를 실어 낭송하였습니다
4. 가을이면 생각나는 일 : 낭송 유재호/시 이생진
생각은 자유니까 마음대로 하는 것인데 만일 지금 60년을 돌려줄 테니 돌아가겠느냐 한다면 나는 돌아가지 않겠다 그렇게 쓸쓸했던 가을 소박한 차림에 소탈한 눈으로 산언덕에서 기다란 미루나무 잎이 하늘로 가려다 지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어린 맘에도 이처럼 아득한 세월을 어떻게 살아간담 남들은 어려서의 걱정을 부모가 했는데 나는 내 걱정을 내가 하던 시절 그것이 지금은 다 살아서 없어지고 마지막 잎새처럼 남았구나 60년을 돌려줄 테니 다시 돌아가겠느냐 한다면 그럴 생각이 없다고 고생해서가 아니라 빼앗긴 것이 하도 많아 다시는 돌아가기 싫다 돌아간다 해도 다시 빼앗길 걸 이대로 가겠다 황금을 준대도 이대로 가겠다 -시집 <골뱅이@ 이야기>에서
* 진흠모/ 낭송가/ 진흠모 가수
5. 가을 사나이 : 김중열
거리의 선율 따라 뛰노는 줄타기로 여기저기 환호성에 휘엉청청
한밤의 어지러진 발자욱 소리 따라 속절없이 뛰놀아 취했다지
혼을 잃어 밤의 심장 두드리니 블랙홀에 빨려간 그 이후에 비어져간 허탈로 후회 했더냐
별똥들 오던 곳으로 가로질러 뇌리 속에 사라져 흩어지나니 밤을 지펴 날리던 나는 어데 있더냐
이름도 모를 곧 떠나갈 여인네에게 가을 사나이라 불러 달라 구걸하며
갈맛*으로 함께 뒹구르자 유혹한들 혹은 밤을 또 태워 비워간들
남겨진 넋으로 되돌릴까 하더라만
부서진 밤하늘의 파편에 상처가 더하여 상처 입은 가을밤이 그리 서글피 울었던가
부르르 몸서리로 낙엽이 또 추락한다
* 갈맛: 가을 맛의 줄임
* 아라밴드 이끎이/ 시인
모꼬지 참석 6년만에 낭송 데뷔하는 조철암님
6.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조철암 낭송/ 이생진 시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3년동안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ㅡ 1000억의 재산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ㅡ 그 사람 생각을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ㅡ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그게 무슨 소용있어''
기자는 또 한번 어리둥절했다
ㅡ 다시 태어나신다면? ''어디서?''
ㅡ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에서 태어나 문학할 거야''
ㅡ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
1000억이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는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이생진, 그 사람 내게로 오네(시로 읽는 황진이), 우리글, 2004/
상:김문수 변호사/하:권영모 시인
7. 인연: 권영모
스치듯 지나친 당신 가슴과 나의 그리움 영원한 사랑 위해 타오르던 모닥불
당신이 떠났기에 꺼졌습니다 이토록 슬픈 것이 사랑이었다면 차라리 그 사랑을 하지 말 것을
난 외진 길을 가야 합니다 가다가다 지쳐 쓰러지면 몰려온 소낙비 날 깨워 주리라 믿고 그 미련에
또 하나의 눈물이 떨어진다 해도 난 묵묵히 떠나렵니다 가슴에 스며들면 사랑이라 했지요
빈 가슴에 스며드는 그 슬픈 사랑 어떤 이에겐 나도 그런 사람이었을까요
작은 상처로 남은 낙엽이 구르네요 마음엔 찬바람이 스미고요
거나하게 취한 가슴엔 새싹이 돋아납니다
푸릇한 그림 그리다 웃으며 하늘의 별을 보며 잠에 듭니다
영원할 것 같던 그 인연 가슴에 상처 또 하나씩 늘어가는 날들 ....
* 진흠모/ 서예가/ 시인
8. 오늘을 위한 기도 :낭송 김경영/시 김소엽
잃어버린 것들에 애달파하지 아니하며 살아 있는 것들에 연연해하지 아니하며 살아가는 일에 탐욕하지 아니하며 나의 나 됨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내 안에 살아 있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가난해도 비굴하지 아니하며 부유해도 오만하지 아니하며 모두가 나를 떠나도 외로워하지 아니하며 소중한 것 상실해도 절망 하지 아니하며 오늘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누더기를 걸쳐도 디오게네스처럼 당당하며 가진 것 다 잃고도 욥처럼 하느님을 찬양하며 천하를 다 얻고도 다윗처럼 엎드려 회개하는 넓고 큰 폭의 인간으로 넉넉히 사랑 나누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 진흠모/ 낭송가/ 라인댄스 강사
9. 도심의 슬픔 : 박산
네모반듯한 아파트 빌딩들 가득하고
살이 집기들조차도 다들 각진 것 투성이
무엇보다 직선만이 우선하여
쉬고 숨 쉴 둥근 숲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고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앞만 보고 질주하는 사람들
멀쩡하던 사람이 거리에 쓰러져 신음을 해도
아예 관심이 사라져 간 이기적 공간에서는
그저 죽어 떨어지는 낙엽 같은 하찮은 생명일 뿐
누군가를 가슴 속으로 사랑해야 하는 일 조차도
저울로 그 무게를 정확히 재고 그 균형이 딱 맞을 때
그제야 입을 맞추고 계약서상의 의무적인 배를 맞춘다
여유 속 굽어져야 생기는 낭만은
그저 헤프고 천박하다 비난할 뿐
달이 차고 기울어짐과 별을 헤아린 적이 있는지
한낮 구름의 느린 움직임은 얼마나 능청스런 자유인지
깊지 않은 산 속
새벽 샘물 한 바가지 입에 물고 우르르륵!
입가심으로 뱉어내는 그 상쾌함을 아는지
아무리 이러한 순수를 소리 높여 부르짖어도
세상모르는 철부지 노릇이라 질시나 받으니
너나없이 만날 일 없어 생겨 난 고독에 더 슬퍼진다
* 진흠모/ 진행자/ 시인
퍼포먼스 중인 이생진 시인과 현승엽 가수(111+77)
10. 수항도首項島-숨겨 둔 여인: 이생진
저 섬 수항도首項島* 아주 작은 섬
마라도의 6분에 1 0.05평방킬로미터 해안선 1km
언덕에 집 두 채
하나는 빈 집이고 하나는 할머니 혼자 사는 민박집
한 낚시꾼이 숨겨 둔 여인과 숨어 살다가 들통이 났다는 곳
그래서 격렬한 부부 싸움이 해상에서 벌어졌다는 섬
수항섬 그 집은 비어 있고 민박집 할머니 빨래만 나풀거린다
저런 섬 섬을 알게 되면서
나도 나를 숨기고 싶어 저런 집을 찾아 다녔지
*수항도首項島: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유송리에 속한 섬 * (1929- ) 떠돌이 방랑 시인
이생진 시인 담론: 숨는 다는 거, 숨는 다는 거, 숨바꼭질을 한다는 거
엄마가 어린아이를 길에 걸리다가 살짝 숨는 맛
저 아이는 어찌될까?
이상의 소설 '잃어버린 꽃'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다는 것이다'(중략)
* 김원수 시인께서 늦게 참석하시어 김진중 시 '사람의 향기'를 낭송하셨습니다
* 조정연님의 피아노 연주 'Hey Jude' 가 있었습니다
* 김민열님의 트로트 메들리 장기자랑과 장상희님의 대청봉 등정기 등의
훈훈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 진흠모 가수 유재호님의 노래와
항시 그렇듯이 이생진 시인과 함께하는 현승엽 가수의 공연으로
뒤풀이 2부 순서를 끝냈고 9월을 보내는 아쉬움에 일부 동인들은 늦께까지의
담소로 남아 모꼬지의 여운을 만끽했습니다.
* 이생진 시인께서 감내하신 이별(喪配)에, 진흠모 동인 모두 고개숙여 사모님의 명복을 빕니다.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콘돔 두 개 (0) | 2016.11.07 |
---|---|
인공지능이 지은 시 - (0) | 2016.10.31 |
고사우제(Gosausee)- (0) | 2016.10.10 |
구박받는 삼식이 (0) | 2016.10.05 |
진흠모 111+76 (0) | 2016.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