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 4월 - 새벽 이야기

박산 2016. 4. 8. 09:47

 

     

     

    지리산 등줄기 아래 동트기 바로 전의 화엄사

     

    구례 화엄사 4월 새벽 -

     

    - 화엄사 아침기상

    호텔방 

    옆에서 잔 벗은 부처를 만나러

    새벽 4시 방문 열어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나갔다

    이불 속 눈만 감고 있는 나는

    시詩를 만나려고 여명黎明을 기다렸다


    부처를 만나는 시간이나

    시를 만나는 시간이나

    다 새벽이고 아침이다

    나도 어서 일어나야지 



    -  새벽 새 소리


    새벽어둠 

    발자국 죽여 조용히 지나는 내 소리가 시끄러운가

    반기는 소리가 아니지 저 소리는

    숲의 적막을 깨는 내가 미워 그럴거야

    시커먼 내 그림자도 무서워 그럴거야

    그렇다 한들 그리 시끄럽게 울지마라 

    알고 보면 난 예순 넘은 너그러운 아저씨란다

      

      동틀 무렵 적멸보궁 석탑, 석탑보다 벚꽃지는 게 더 서러웠다

    - 화엄사 입구 개울가 붉은 벚꽃


    붉은 늦벚꽃 몇 잎이

    새벽 개울 흐르는 소리에 슬피 떨어진다

    개울 깊은 탓에

     

    남보다 며칠 더 살았지 하며

    어차피 갈 길 이라 체념하지만

    그래도 서러운 건 어쩔 수 없다

    화엄계곡 먼동이 훤해질 때

    나 가는 길 곱게 비추어 주겠지

     


    - 절집 담 이끼


    절집 담에 낀 이끼는

    무얼 먹고 이리 소복소복하게 살까

    비오는 날 빗물이 고작이겠지

    아니야 

    독경 소리 목탁 소리 먹어 그럴 거야     

     

      


    - 화엄사에서 화엄이란?


    수행修行 만덕萬德 덕과德果 다 모르겠다

    그냥 반야교 건너 대웅전 목탁소리 듣는다


    꽃잎 하나 새벽을 이기지 못해 계곡에 아프게 떨어졌다

    화엄이 꽃잎지고 새잎 나는 윤회인가 한다


    여명은 반질잔질한 목탁 위를 타고 논다 

     

        


    - 새벽 화엄사


    화엄사 절집 마당

    천백 년 전 부터

    좋다 싫다 없이 서 있는

    두개의 동 서 5층석탑

    사이 계단 올라

    대웅전에 들어 부처 얼굴 보니

    갑자기 절이 하고 싶어졌다

     

    내려다보고 있는 부처야

    내가 불자佛子라 하건 아니라 하건 무슨 상관이랴


    나 좋아 삼배 올리고

    가만히 앉으니 새 소리만 들린다

    나의 침묵에 고요가 춤을 추더니

    갑자기 흐르는 눈물은 무슨 조화인가?

    보는 이 없지만

     

    쑥스러움에 눈가 훔치고

    부석부석 지갑 열어 오천 원권 지폐 한 장

    살며시 불전함에 넣는다

     

      화엄사 적멸보궁 오르는 길 집어 진한 키스한 동백


    - 동백은 떨어져도 예쁘다


    화엄사 절집 뒷길

    적멸보궁 오르는 길

    햇살 파고든 왼편 숲길

    붉은 동백은 붉게 떨어져

    헤픈 새벽을 맞고 있다

    힘없어 떨어져

    너나없이 머리 풀고 가슴 헤쳐

    누군가 품어 주길 바라지만

    보는 나는 떨어진 너희가 다 예쁘다

    다 품고 싶은 고운 여자다

    한 송이 손 내밀어

    코에 한 번 대고는

    진한 키스를 해 본다

    이리 아름답고 붉은 동백이여

    떨어져 내 품에 든 네가 내 여자다

     

    (박산 시집 '노량진 극장'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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