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집 살림 -
내 할아버지 얘기다
흰 수염이 턱과 콧등을 덮었고
육척 장신에 쪽 뻗은 긴 다리가
그 시절 여인네들 애간장 꽤나 태웠나 보다
날 키워 주신 할머니와
건너 집(우리 집 건너에 있는 집이라)을 두셔
두 집 살림인데
그것도 부족하여 높은절이(주1)에도 인연을 두시고
그리고도 이름 모를 ㅁ 할머니, ㅅ 할머니
변변한 직업도 없는 양반이
돈질도 없으시면서 능력이 좋으시다
성깔은 또 왜 그리 급하신지
시킬 일 있으시면 말로 할일이지
긴 곰방대로 놋재떨이 사정없이 두드리면
그 요란한 소리 건너방 사랑방 골방 온 집안을 울리고
“네!” 소리치고 뛰어가는
어머니도 나도 순종만 아는 하인 이었다
풍이 들으셔 거동불편 내일 모레 돌아가실 날 잡아 놓았는데도
성치 않은 몸 지팡이로 비칠비칠 움직여 마실 나갔다 와서는
긴히 할 얘기 있다 내 어미 불러 방에 앉혀놓고 하시는 말씀이
“애미야 ! 강대골(주2)에 혼자 사는 참한 할멈이 있다는데
네가 한 번 만나보고 오려 무나”
직업도 있고
돈도 그럭저럭 벌어다 주고
두 집 아닌 한 집 살림에 목숨 건 나는
두들길 곰방대도 놋재떨이도 없지만
있다 한들 그런 권력도 없음에
영감님 ‘여러 집 살림의 노하우’가 지금 궁금하다
주1) 높은절이 : 지금의 노량진 중계소 영등포고등학교 올라가는 언덕배기 동네 옛 이름
주2) 강대골 : 노량진 장승백이 양영대군묘 가는 길 고개 넘는 동네 옛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