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산바라기

박산 2015. 7. 4. 11:13

     

     

    Clod & AloneCold & Alone.jpg

     

     

    먼산바라기

     

    장면 1

     

    응당 먼 길 가는 자者는

    땅 살펴 걸음걸이 재고

    이리 저리 고개 짓도 겸손지덕(謙遜之德)해야 하거늘

    힘만 잔뜩 들어간 눈동자로

    못 오를 하늘만 보고 걷다가

    발부리에 돌이 살짝 걸렸는데도

    끼우뚱~ 엎어질 뻔했지요

     

    어깨 곧추 세워 다시 가는데

    발목이 시큰하고

    허리를 접질렸는지

    욱신거림이 한움큼이라

    오른손 주먹 꽉 움켜쥐어

    뒤로 팡팡 두드려 보니

    뭉친 살점이 풀어지면서

    굽은 등뼈가 다시 서는 순간

    트림 한 번 꺼억 하고

    먼산바라기

    떠 있는 구름에

    입 벌려 속 시원히 숨을 고릅니다

     

    다시 뚜덕뚜덕 길을 갑니다.

     

    이번에는

    하늘이 심술 났는지

    비를 툭툭 뿌려댑니다

    손에 든 우산도 없고

    몸뚱어리 싸고 가린 것도 얇아

    훤히 드러난 팔에는

    닭살 같은 소름이 촘촘히 돋았으니

    본능이 종종걸음을 재촉하여

    근처 야트막한 비탈

    잎사귀 우거진 나무 아래 찾아

    가쁜 숨 몰아쉬며

    허리 움츠려 쭈그려 앉았지요

     

    흔들리는 잎사귀들 위에 위태로이 놀던 물방울들이

    송송 떨어져 귀와 볼을 적시며

    콧김과 어우러져 간지럼을 주는데

    손가락 비벼 가만히 귀 기울이니

    바로 머리 위에서는

    호로록 호로록 딱새들 소리가

    빗방울에 반주되어 들립니다

     

    나처럼 피난 온 새인지

    둥지 틀고 앉은 텃새인지 분명치 않으나

    지금 이 순간

    비를 피하려 웅크리고 있는 건

    같은 신세임에 틀림없습니다

     

    비는 멈추고

    먹구름은 하늘 외줄기 빛을 이기지 못하여

    저쪽 산등성이 끝으로 사라져 가는데

    비 맞은 나그네 굽은 등짝은

    김이 모락모락 합니다

     

    새삼

    하늘 참 맑다 생각한 나그네

    풀어진 눈으로

    그저 무심한 발길로

    먼산바라기를 합니다.

     

    아직 갈 길이 남았거든요

     

     

    장면 2

     

    나이 스물 몇 살에

    멋모르고 뛰어든 직장이라는 집단에는

    술이 있고 돈이 있고 할 일이 있었는데

    앞으로 가는 건지

    뒤로 가는 건지도 느끼지 못한 체

    발톱이 빠지게 달려가면서도

    숨이 차지 않았으니

    뛰고 있었는지도 몰랐지요

     

    그러고 그러다 그 집단의 불균형에

    마찰음이 커져 에이~ 하고

    결국 나만의 고독한 집단을 만들게 되었지요

     

    거기나 여기나

    역시

    그 술과

    그 돈과

    그 일에

    가위눌려

    떠있는 해 응시한 지 오래고

    휘영청 보름달 마주한지 오래고

    총총 별을 따 본지도 오래였지요

     

    눈眼자위는 평심平心을 잃은 지 오래고

    돈 들여 하는 운동도

    단지 술을 맛있게 먹기 위함이고

    통장에 늘어가는 동그라미 숫자는

    일 그 자체를 혹사하기 위함이었지요

     

    사람은 이미 새로운 만남으로

    가득 메워졌고

    옛 친구는

    멀리서 측은히 바라 볼 뿐 이었지요

     

    그러다

    어느 한 순간

    자신이 만들고 펴 보던

    익숙했던 숫자의 불일치에 쫓겨

    숨을 곳도 없는 망망대해

    한 가운데 떠서

    긴 한숨만 토吐하게 되었지요

     

    그러고 어찌어찌

     

    세월이라는 명약名藥의 효력을 받아

    육지 한 자락 겨우겨우 다시 밟아

    이곳저곳 헤매고 다니길 얼마 만에

    시골 어느 교회 종탑 십자가에

    무릎 꿇어 기도하였는데

    보여야 할 구원은 올 생각도 안하고

    두 겹 세 겹 겹쳐진 십자가는

    형체 변형되어 뭉쳐진 지폐 덩어리로만 보이는데

    계속된 위선의 기도는

    탐욕의 욕망만 더 키워가더니

    분을 삭이지 못한 머릿속 실핏줄은

    제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터지고 말았지요

     

    깨어나 다시 보니

    돈과 술과 일들이

    한결같이 모두 다 작아져 있었어요

     

    시간이 모아 온 세월은

    티끌처럼 조금씩 가더니

    그 작아짐에

    일상은 평온하고

    더 이상의 큰 아픔을 저만치 멀리한 채

    멀찌감치 돌아 왔던

    그 고통만을 간직하고 있었지요

     

    과거로부터 돌아와 앉은 지금은

    빠져있는 머리카락 숫자만큼이나

    텅 빈 공허가 자리하고 있지만

    오랜 습관이 주는 불뚝불뚝 솟는 욕망은

    빈한貧寒이 가져온 단순함에 잠잠해집니다

     

    그리곤 자주

    아무 생각 없이

    먼산바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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