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티우스를 꿈꾸며

박산 2022. 11. 17. 08:27

'A corner of the Korean Palace in autumn' Photo by San Park

 

시집 《'인공지능이 지은 시' 중 2020, 황금알》

 

 

호라티우스를 꿈꾸며 - 

 

 

하루하루를 사는 게 다 전쟁이지

 

밥벌이 핑계로 내던져진 육신

미끈한 자동차

붉은 입술과 하이힐이 어울리는 애인

건성으로 웃어주는

 

이 전쟁에선 무조건 살아내야 한다

생존을 위해 몰래 품고 있던 칼을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위해 뺐다

 

벤츠 트렁크에 있던 명품 골프채가

때론 마구잡이로 부수는 도구로 변모했고

기세등등하던 이 불쌍한 신세가 되었다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 역시 부지기수다

 

쉬익 바람을 가르는 칼 소리가 익숙해지고

시간을 충실히 버티는 중 전쟁이 잠시 멈췄다

 

어깨 부서지고 머리 깨져 터져 나온

회복 불가할 상처가 쓰리고 아팠는데

갑자기 하늘이 행운을 내려주었다

나의 부자 친구 마이케나스!

그가 준 대지에 큰 집을 짓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산해진미에 달콤한 술을 정신없이 마셨다

 

다시 찾아올 전쟁의 공포는 생각하지 말자

 

내일보다는 오늘이

다음보다는 지금이

 

이 순간이 행복이고 전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충성을!

사랑하는 나의 벗 마이케나스에게 영광을!

 

꽉 찬 지하철 사람에게 떠밀리고 치여 앙다문 신음 소리를 내며

펑 쏟아져 나왔다 다시 들어가는 일상이 반복된다

빌딩 숲에 부는 칼바람에 댕강댕강 모가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광속의 무한 전파에 실린 무수한 음모들은 어떤 소리조차 없다

형무소 문을 나오는 패잔병들은 억지웃음을 짓는다

 

모두 전쟁에서 돌아온 호라티우스를 꿈꾼다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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