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낙지집

박산 2022. 2. 25. 14:30

무교동 낙지는 너무 매워 양념 안 한 콩나물과 단무지가 필수고 멀건 조개탕이 궁합이다

 

낙지집 ㅡ

 

젊은 시절부터 즐겨 먹던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힐 정도의 매콤한 낙지볶음을 여전히 좋아한다. 서울 낙지볶음의 탄생지 무교동하고는 원래 친했다. 염세주의에 빠져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던 학교가 지척이고 본격적으로 술을 마셨던 직장 동네였다.

 

이러니 지금은 거의 사라진 옛 낙지집들 생각만으로도 다동 무교동 청계천 수송동에 이르는 오밀조밀 그 골목골목 집들이 떠올라 정겹다.

냉면 대접에 막걸리를 가득 부어 호기를 부리던 시절에, 겁대가리 없이 딱 한 번 유치한 치기로 소주를 세 병 부어 원샷 하려다 목구멍에 사레들려 죽을 뻔한 기억도 있다.

 

초가집 실비집 이강순낙지 등등에 그 유명한 유정낙지집은 현재 조선일보사 뒤로 이전했는데 현대화된 테이블도 변질된 매운 맛도 마음에 안 든다. 예전 낙지집들은 실내에 물레방아도 돌고 병풍 도자기 풍로 담뱃대 고가구 등등으로 꾸며져 있어 한옥 사랑방 분위기가 있었다. 달포 전에 시낭송가 몇 분과 유정낙지집을 갔었는데 전혀 기대했던 예전 분위기도 맛도 적어도 내겐 아니었었다

 

영등포역 앞에 간혹 가는 막걸리 빈대떡 낙지집이 마치 예전 무교동 같이 도자기 고가구 풍로 등의 장식품들로 운치있게 실내가 꾸며져 친근하다. 좌석에 앉자마자 따끈한 누릉지밥을 내와 정감이 넘치고 오래 앉아 막걸리를 천천히 마시기에도, 동네 구멍가게 간이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 다 쳐다보며 두부김치 먹는 편안한 분위기다.

 

항시 그립고 정다운 분 모시고 갔더니, 옛날 무교동 분위기 난다고 좋아하시는 모습에 덩달아 나도 좋아 녹두 빈대떡에 낙지 소면 안주 삼아 막걸리 두 병을 비웠다.

 

70년대 낙지집은 무교동에서 사라졌지만 영등포역 앞에 딱 하나 남아 있어 추억 놀이 하러 가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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