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낸 길

박산 2021. 2. 18. 09:21

                              「雪之微笑」윤영호 사진

시집 『인공지능이 지은 시』 52쪽



「내가 낸 길」

자주 다니는 뒷동산 숲에
사색을 위한
나만의 길을 냈습니다

가시덤불을 잘라내고
풀 뽑는 일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지요

하루 두어 시간씩
닷새에 걸쳐 장갑 낀 손노동으로
한 쉰 걸음 정도의 길이 났습니다

호젓하게 들어 있다가
모기에게 수없이 물렸지만
다람쥐도 만나고 새 소리도 듣고요

한 해가 지났습니다
두 해도 지났습니다
백 걸음 정도로 길어졌습니다

혼자 다니는 길이
영원히 혼자일 수는 없겠지만
이백 걸음을 원치는 않습니다

노란 숲에 난 두 갈래 길에서
이 길 저 길 망설였던 시인을 뵌다면
직접 길을 내시지요?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도 나는
숲을 보고 있습니다
어디에다 나만의 길을 또 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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