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동백이 붉어도
나 보기엔
마냥 수줍게만 보입니다
아직 찬바람은
창연하게 걸린 풍경 소리를
나지막이 부르고 있습니다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길섶에
붉은머리오목눈이 한 떼가
뭉쳤다 흩어지며 털을 부빕니다
마른 잣나무에 물기 오르니
다람쥐 눈망울은 분주해지고
바람은 또 기웃하며 어정거립니다
비탈 데크 계단을 오르며
햇빛에 비친 그림자를 앞세우다
문득 당신 생각이 납니다
과거에도 있었을 나무에 기대
미래에도 있을 광경을 내려보니
그 모든 것이 하나로 겹쳐집니다
뭉게구름 한 뭉치가
잠시 해를 가리고 있지만
으레 그랬던 일처럼 무심합니다
지금 무얼 하고 계신가요
나는 그대 그리움을 만들고 있는데
바람은 또 귀를 간지립니다
희망이 절망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파도가 일렁이는 절벽 꿈을 꾸었지요
까마득한 얘기는 이미 잊혀졌습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진종일 서서 그대만 생각하고 싶습니다
구름이 저만치 떠나가고 있습니다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 바람 탓인 줄은 압니다
그대도 아시겠지요
우리들의 길었던 입술 호흡조차
바람의 언어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소나무도 사실 늘 푸르지는 않습니다
속내 곪아 벗겨져 때때로 떨어집니다
바람이 달래가며 사는 셈이지요
그대여
바람이 자연의 언어이듯
그 바람에 들어 살고 싶습니다
그 바람 중에
봄바람이련
봄바람이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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