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박산 2021. 3. 2. 10:37

◁Wild Cherry ▷ 김명옥 화가

 

「봄바람」

 

동백이 붉어도

보기엔

마냥 수줍게만 보입니다

 

아직 찬바람은

창연하게 걸린 풍경 소리를

나지막이 부르고 있습니다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길섶에

붉은머리오목눈이 떼가

뭉쳤다 흩어지며 털을 부빕니다

 

마른 잣나무에 물기 오르니

다람쥐 눈망울은 분주해지고

바람은 기웃하며 어정거립니다

 

비탈 데크 계단을 오르며

햇빛에 비친 그림자를 앞세우다

문득 당신 생각이 납니다

 

과거에도 있었을 나무에 기대

미래에도 있을 광경을 내려보니

모든 것이 하나로 겹쳐집니다

 

뭉게구름 뭉치가

잠시 해를 가리고 있지만

으레 그랬던 일처럼 무심합니다

 

지금 무얼 하고 계신가요

나는 그대 그리움을 만들고 있는데

바람은 귀를 간지립니다

 

희망이 절망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파도가 일렁이는 절벽 꿈을 꾸었지요

까마득한 얘기는 이미 잊혀졌습니다

 

아무 일도 하고

아무 생각도 하고

진종일 서서 그대만 생각하고 싶습니다

 

구름이 저만치 떠나가고 있습니다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람 탓인 줄은 압니다

 

그대도 아시겠지요

우리들의 길었던 입술 호흡조차

바람의 언어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소나무도 사실 푸르지는 않습니다

속내 곪아 벗겨져 때때로 떨어집니다

바람이 달래가며 사는 셈이지요

 

그대여

바람이 자연의 언어이듯

바람에 들어 살고 싶습니다

 

바람 중에

봄바람이련

봄바람이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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