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모꼬지' all photo by 김연선
12월 28일(매달 마지막 금요일)
7시 인사동 작은 사거리 50m 안국동 방향 전북지업사 골목
순풍에 돛을 달고(733-7377)
1. 전신사리 - 윤준경
2. 녹슨 철모와 크리스마스 - 양숙
3. 선유도 - 김재호 with 하모니카 연주
4. 서른 잔치는 끝났다 - 김정욱 낭송 (최영미 시)
5. 가로수 물오르면 - 김윤희
6. 고운 소리 새 - 김경영 낭송
7. 시 때문에 미안하다 - 유재호 낭송 (이생진 시)
8. 노인과 바다 - 김미자
9 북경 까페 - 김소양
10. 종각역 3번 출구 - 박산
11. 사랑해 지연아 - 이생진 with 담론
판소리-시소리 소리꾼 김숨
111-30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스케치
11월 30일(매달 마지막 금요일) 7시
1. 꽃달임 -양숙
어서 오시게나
매화의 꿈 영글기 전
달아나려는 향기 목 가는 백자 속에 잡아두었고
진초록 남아있는 텃밭향기 짙은 들깨 꽃송이로
깨보숭이도 마련했네
따가운 햇살 받아 노오란 꿈 더해 가는 향기 짙은 甘菊도 준비했으니
예쁜 모양 살려 집어 주시게나
그저 가을을 품을그저 가을에 취할
그저 가을에 젖을마음 하나만 가지고 오시게
토방 댓돌 아래 귀뚤이는 버얼써 기다리는 눈치네
어서 오시게나
*꽃달임: 진달래나 국화의 꽃잎을 따서 전을 부치거나 떡에 넣거나 술을 담가 여럿이
모여 먹거나 베개 속에 넣어 즐기는 일.
*시인, 교사 - 최근 시집; 당신 가슴에 (email : 55yasoo@hanmail.net)
2. 김재호 하모니카 연주 - 마포종점, 섬그늘
모두 손벽 치개 만든 흥겨운 연주였습니다
매달 들러 좋은 연주 들려주었으면 합니다
* 교사
3 물고기처럼 - 안다혜
어느날 나는 울었다
이유 없는 슬픔이통째로 쏟아진 듯
몸통 깊숙한 것들
이뙤약볕 아래 뒤집어 널어 둔 빨래처럼 흔들리며
손발 없이 몸통으로 울었다 전생에 물고기였나 보다
아가미가 닳아져버린 물고기처럼
얉은 숨에 붙은 생명의 파편들이송두리째 올라와
숨골마저 타악 막혔나보다 지상과 천상의 어느 경계던가
어느 경지던가그 빛나던 비늘의 투명이 나무껍질처럼 벗겨지고
초유의 것을 잃은 채
덜렁덜렁한 몸통으로 울었다
찢어진 아가리로 숨쉬기를 열망하며
선술집 낮은 조명으로 울었다
축축하게 젖은 몸통으로 파닥거렸다
* 시와 사상사ㅡ시집;여섯개 안에 일곱개 중에서
* 현,국어 논술학원장 (sore4202@hanmail.net)
곽향숙님 - 이생진 바람 패미리 동인
4. 시를 피해 가는 사람들 - 낭송 유재호 (이생진 시)
시는 죽어라 하고 안 읽으면서
간판은 시만 골라 내걸던 인사동
그것이 고마워서 시골 시인 넥타이를 매고
빈소에 들어서듯 찻집에 들어서네
'구름에 달 가듯이 낮에 나온 반달 술 익는 마을 귀천歸天
시인학교詩人學校 시인詩人과 화가畵家 바람 부는 섬 무릉도원 가는 나그네
' 이렇게라도 도시 한복판에 시가 있다는 것은다행한 일
이 기회에 시인도 돈을 벌어 잘 살아야지 했는데
시인의 간판은 하나 둘 내려놓고
돈 냄새 나는 것으로 바뀌네
도시 한복판에서 시를 몰아내니
쫓겨난 시 갈 곳이 없어
하나는 산으로 가고 하나는 섬으로 가네
*인사동에 내건 간판(상호) ㅡ시집 ;인사동에서
* 봉재 사업가. 우리 시대의 진정한 歌客
5. 추포도 소금꽃 - 장진규 낭송(이생진 시)
염전에서 소금물 받아먹고 사는함초鹹草
짜다고 찌푸리는 일이 없다
심해숙沈海淑씨도 함초 같다
이름 석자가 모두 삼수변이라며
바다와의 인연을 자랑하는 여자
육지에서 시집와 얻은 벼슬 부지런한 여리장女里長
깊은 바다 맑은 물 심해숙深海淑
추포염전 김대식씨 부인
사내는 고무래를 밀고여자는 소금차를 밀고
창고에서 흘러나오는 ‘목포의 눈물*’은 그래서 짜다
염도 2도의 바닷물을 폭염에 구워
25도의 해수에서 피는 하얀 소금꽃
소금꽃이 필 때마다 김씨 부부는 얼굴이 환하다
암태도에서 또 작은 섬 추포도로 들어와 천일염 만들기 30여 년
아내를 강원도 삼척에서 추포도까지 데려오는데
김씨는 섬이라는 말을 숨겼다는 소문
그래서 속은 것 같다는 뒷이야기
속아 사는 여자가 어디 한둘인가
오늘도 저문 하루 백설 같은 소금을 거둬
창고에 밀어 넣는 *‘목포의 눈물’
그래서 눈물은 짜다
* 2011.7.16/선생님 섬 이야기 홈피에서
*‘목포의 눈물’:이난영님의 노래 부러웠습니다
* 부러웠습니다 - 장진규 낭송 (이향아 시 )
6. 대책 없는 여자 38 - 안숙경
“맞선을 보러 가고 있고요. 공신력 있는 정보에서 추천했고요. 헌데 경쟁자가 관광버
스에서 수군수군 모두 이~뻐. 간택을 꿈꾸며, 마음 좋은 손으로 나누어주는찰밥을 찰떡
궁합의 의미로 먹고요, 비 내리는 도로를 달리는 바퀴처럼 조심스럽고, 긴장되는 만
남. 설레임. 반나절을 달리던 버스가 목포를 지나 비가 사선을 긋듯이 내리치는 숲속
에 멈추었고요. 빗줄기 리듬은 잎사귀마다 음표를 그리고, 웅장하면서도 정겨운 돌담
의 요사채. 그 돌담사이사이에서 뻗어나간 풀들이 풍경 좋은 염불을 하고 있고요.
달마산 병풍으로 둘러싼 대웅보전. 해남 땅 끝 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 부처님이 사랑
을 고백합니다. 눈 맞춤에 눈 시리게 떨다 엎어지고요. 대단한 걸 보여주고 싶어
비바람에 떨어진동백꽃을 온몸에 부치고 춤을 추고 있고요. 서울에서 끌고 온 짐
덩어리 벗고, 맨발로 자타일시성불도 춤을 추고 있고요”
* 최근 시집 : 보름달이 뜨면 배고픈 여자 * email : sundance425@naver.com
소프라노 정수희 곽성숙 바람패미리 카페지기
7. 소프라노 정수희 노래
1. 넬라 판타지아 2. 고향의 노래
울림이나 음향시설이 전혀 되어있지않는 장소에서도 모꼬지 동인들을 위해
군산에서 상경 최상의 목소리를 들려주셨습니다.
* 정수희: 군산 실버 시립합창단 지휘자
최근, 고은 시 '만인보' 오페라 공연 (군산)
8. 이우강변에서 만난 백석 - 이복래 낭송 (공혜경 시)
이우강변길은 6킬로쯤 걸어야 마침맞게 운동이 된다
오늘은 얼마쯤을 걸었는지 알수가 없다
주머니에 푹 찔러넣고간 한편의 시는
나를 16킬로인지 60킬로인지 몸의 감각을 잃을만큼 걷게 만들었다
다리가 아픈지도 얼만큼 땀을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이생진을 만났고 백석을 만났고 자야를 만났고
그들 안에 있는 나를 만났다
나는 그들과 함께 울었고 벅찬가슴 쓸어내리기도 했고
입술 깨물며 아린사랑 보듬어 안기도 했다
백석의 영혼은 길상사로부터 와 이우강변을 떠돌고 있었고
나는 길이 끝날 때 까지 그들을 따라 걷고 싶었다
걷다가걷다가 문득 보니 사탕수수껍질이 내 발목을 묵었고
서리 앉은 동백잎이며 뒹굴던 낙엽들이 어지럽게 나를 막고 있었다
타버린 낙엽들 사이로 사랑초 무덤이 보인다
그옆에 몸을 억세게 뒤틀며 맴도는 검붉은 지네 한마리
이세상 마지막 절규의 몸짓으로 무덤을 기어 오르려한다
나는 한참을 내려다보며 눈물 한방울 내려놓고 왔다.
* email: lbr4824@hanmail.net* daum cafe 시인의 작은숲 카페지기, 시인
9. 사법부의 불신을 보며 - 김문수
여의도는 얄팍한 수가 더 잘 통하고
관청 어르신은 복지부동
판관 나리는 독선 잘난 언론은 한탕주의
무인들의 허위보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단번에 승패 마무리 되고 잘잘못이 늘 흐릿하고
자리 그러하고 특종이 명암 가르고 눈만 가리면 소나기 피해지고
실체나 바른 길을 모르는 영원히 출렁이는 미로
뭐든지 날로 먹으려는 무지몽매에서 비롯됐다
사법이 불신 받는 건 당연 권위주의 극복의 결과물이다
상반되는 주장 중 어느 쪽이 옳은 건가는 몹시 어려운 문제
반이 불만이면 여파가 클 수밖에 스스로 인정하고 반성하는 거는 좋은 길
백 점 만점에 칠십 점 맞는 거도 힘든 일
주변론은 치장으로 본론은 본질을 찾아가야 할거야
백년 천년이 걸릴지라도
* 경향합동법율사무소 변호사(구박 받는 시 변론 중)
10. 즐거운 편지 - 김경영 낭송 (황동규 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사소한 일 일 것이나
언젠가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는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 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거 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 눈이 퍼붓고 할 것이다.
* email : rud-dud@hanmail.net* 인사동 모꼬지 대표 시 낭송가
라인댄스 강사
11. 한계령을 위한 연가 - 곽성숙 낭송 (문정희 시)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 .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란이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남자를 위
하여/민음사)
* '이생진, 시가 바람 되어'- 카페지기
12. 주문을 걸어봐~ - 김미자
네게 쏟아 붓고 뒤돌아 나오던 날
욕실에서 샤워기 물을 콸콸 틀어놓고
얼마나 큰 소리로 저주를 퍼부었던가.
에이~이게 뭐야!!!! 오.블.리.아.테.내 기억을 지워버릴까,
저 사람의 기억을 없애버릴까?
수리수리마수리 수수리 사바하,수리수리마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수리마수리 수수리 사바하!
연거푸 세 번을 외워서 내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씻어 버릴까?
거봐봐, 내 말대로 해주었으면…….
비비디바비디부를 외칠걸 그랬나?
아니다!차라리 아브라카다브라를 외웠으면 좋았을 걸…….
오늘도 여지없이 지우고 다시 쓰고픈 기억들!---------------------------------------
*오블리아테: 헤리포터에 나오는 기억의 조작 주문
아브라카다브라: 내가 말한대로 될지어다.
비비디바비디부: 생각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수리수리마수리 사바하: 한 번 외우면 소원성취하소서,
세 번 거푸 외우면 입으로 지은 업을 모두 씻어냄.
*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는 교사
13. 미움 - 박산
情에 농락당하고도 저항하지 않았다
산다는 게 단순하단 결론으로 모든 걸 이해했다
사랑과 미움의 공간에 갈등이란 걸림을 무시했더니
시작과 끝이 정해진 바 없다
못나터지고 미운 놈도
뜬금없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 최근 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 블로그 http://blog.chosun.com/scrpark
14. 시소리 판소리 소리꾼 김숨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 거든
불일 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 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 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 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 힘차게 때려대는 북장단에 듣는 판소리 정말 특별했습니다
김숨님의 판소리 자주 듣길 바랍니다
15. 광주 대전 등지에서 참석하신 바람 패미리 합창 목로주점 -
정수희의 지휘로 전부 합창하였습니다
16. 참석하신 원로 대중음악평론가 이백천 선생께 오늘 모꼬지 소감을 묻자 -
이렇게 훌륭한 모임 이런 저녁 정말 행복한 마음이시라며 다음엔 내가 싸이를
데려오겠다고 하셔서 한바탕 웃음을 폭발시켰습니다.
70년대 나훈아 남진이 선생께서 오라하시면 당연 달려왔을 것이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건강한 모습 모꼬지에서 자주 뵈었으면합니다.
17. 취나물 뜯기 - 이향아
산길을 걸었다. 허리엔 낮으막한 산죽 숲을 거느리고
발 밑엔 가으내 봄내 떨어진 낙엽을 버스럭거리면서 쉬며 걸으며,
걸으며 쉬며 산길을 걸었다. 이승의 끝을 가듯 산길을 걸으면서,
이따금 나는 하늘의 별 같은 땅 위의 풀잎을 찾아내리라 결심하였다.
그것은 향기로운 취나물 잎사귀, 너훌거리는 취나물 잎사귀는 나의 과업.
일순의 섬광 은혜로운 계시여. 이것이 취나물이지요.
분명 이것은 취나물일까요. 나는 그럴싸한 풀잎을 뜯어서 지나가는 이웃 산행자에게
물었다. 어떤 이는 네, 옳습니다. 바로 이게 취나물입니다라고 반겼다. 어떤 이는
이것은 취나물이 아니라 불로초입니다라고 놀랐으며, 어떤 이는 이것은 먹으면
잠자는 듯이 죽는 독풀입니다라고 겁을 냈다. 내가 구하는 것은 불로초가 아니다.
내가 구하는 것은 독풀도 아니다. 내가 구하는 것은 한갓 산나물 취일뿐. 나는 때로
희망, 때로 절망을 번갈아 느끼면서 진리란 무엇인가, 사교(邪敎)란 무엇인가
허우적거렸다. 시간은 흘렀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서 모든 산풀 위의 이슬을
걷어내었다. 해는 떠서 모든 산숲의 한적을 걷고 해는 떠서 산의 영광을 드러내었다.
나는 갑자기 산길을 걷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행복하였다. 취나물을 뜯으시네요.
저쪽 산말랭이 펀펀한 데에 무더기로 있습디다. 취나물을 뜯으시네요. 개울가 언덕에
지천으로 있습디다. 사람들은 비밀한 장소를 일러주듯 내게 은밀히 속삭였다.
허위허위 달려간 산말랭이에도 개울가 언덕에도 무더기로 헝클어진 취나물은 없었다.
취나물을 뜯으시네요. 나도 진작 뜯었으면 좋았을 걸. 인제는 시간이 늦었습니다.
참 잘하시는 일입니다. 이 세상 사람 절반이 내 취나물 뜯기에 마음을 쏟아 주는
듯했다. 행인들은 취의 향기를 사랑하듯 나를 사랑하였다. 세상이 무심하다는 말은
빈말이었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온 산에 묻어 있는 취의 향내를 나는 차츰
깨달아가고 있었다. 차 챠 처 쳐 초 쵸 추 츄 츠 치, 취 취 취 하루 종일 구구단을
외우듯 취를 외우며 산길을 넘었다. 내 그릇에는 겨우 몇줌의 취나물이 고독하게
아주 고독하게 시들고 해는 벌써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인생은 엎드려 취나물 뜯기
나는 마치 취나물을 뜯기 위하여 산길을 걷는 것처럼 세상만사를 착각하고 있었다.
차 챠 처 쳐 초 쵸 추 츄 츠 치, 취 취 취 인생은 엎드려 취나물 뜯기
*시인
18. 다시 압생트 - 이생진
-고흐와 로트레크 술을 마셔야지여기는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으니
자연 존재도 없고 초월도 없어철학이 없으니 니체도 심심하겠다
술이나 마시자 압생트!이 술로 많은 화가와 시인들이 녹았지
오늘 만나자는 로트레크(1864-1901)역시 예외는 아니야
정신착란에 매독까지 어쩌면 그렇게 나를 닮을까
그래 죽음까지도 닮다니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그러니 죽은 뒤에도 술 생각나면
로트레크지 오늘도 로트레크가 나오라는 거야
자주 나가던 몽마르트르 카페로 그는 들어서자마자 압생트 한잔을 내 앞에 놓고
움직이지 말라 한다 나를 그리겠다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압생트가 담긴 잔과
물병’을 놓고 밖으로 나간 적이 있는데 그것을 보니 생각 난다며
이번엔 나가지 말고 술잔을 지키라 한다
파스텔을 문지르는 소리가 나고 내 얼굴을 아래위로 훑어보기에
나는 아예 머리를 옆으로 돌렸지 한쪽 귀가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그는 손을 털고 일어나서 그림을 보여준다
‘고흐의 초상(1887)’
내 가난과 고독은 세상이 아는 건데 내가 너무 긴장했나
아래턱이 콘크리트처럼 굳어 있고 그는 코르몽에게서 4년 째 그림을 배우고 있으니
손 놀림이 정확하지 나는 겨우 4개월 코르몽에게서 소묘를 배웠고
내 그림이 햇볕을 받은 것처럼 밝아진 것은 몽마르트르 덕이야
그러나 나는 커피를 마시거나 춤추는 사람들을 그리는 것보다
몽마르트르 근처 풍경이 더 마음에 들어
저 황량한 바람의 언덕그 쓸쓸한 맛이 술 맛을 나게 하지
지나가던 몇몇 무희들이 눈인사를 하자
로트메크는 내 귀에 대고 말한다 (그의 키는 겨우 150cm)
‘내가 키만 조금 더 컸어도 그림 따위는 그리지 않았을 텐데’
그는 그가 그린 물랭루즈 포스터만큼이나 화려한 여인의 손을 잡고
절름거리며 나간다나는 다시 쓸쓸하다
* 시집 34권 외 다수. 최근작 ‘골뱅이@ 이야기’
* 블로그 http://islandpoet.com/blog
실제 고흐가 마셨던 압생트주
이생진 담론 : 실제 고흐가 마셨던 그래서 황반증을 가져왔던 압생트주를
들고오셔서 실감있는 해설을 해 주셨습니다. 로트레크와 고흐의
관계에 비춘 예술가들의 혼의 정신이 종종 미친 현상으로 나타나듯
이 그림에서도 미쳐야 그림이 나오지만 시에서도 미쳐야 즐길수 있
는 공간이 생기며 그때야 비로서 우리가 모인
'이 모꼬지가 천국이다'란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 낭송과 연주가 끝나고 언제나처럼 이생진을 흠모하는 동인들은 선생님께 격의 없는,
세대를 초월하는 덕담을 건내며 사진을 찍고 술잔을 부딛치고 사인을 받고 노래를
하고 시를 다시 읊조리게 하는 초 겨울의 밤이었습니다. 초저녁 인사동에 내리던
초겨울 소낙비는 아쉬움의 귀갓길을 달래느라 그냥 검은 하늘이었습니다.
* 허영숙 곽오열 장진규 한호 정민호 김재선 이현서
박한아 안영길 이용영 장남열 송해일 님등이 전국 각지에서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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