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entity

박산 2018. 11. 19. 11:02

 

 

 

Identity -

 

작은 다툼에도 마음이 곯아 명치끝이 아립니다

성질 나빠 그러려니 해도

곰곰 따지고 보니

살아온 인생에 정직하지 못 함이 그새 드러나곤 합니다

 

누가 좀, 그런 나를 혼 내주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각질이 굳어버린 뇌실腦室로부터 나온

삶아 뭉그러진 물감자 같은 비굴한 타협은

조건 없는 용서를 계속 합니다

 

그 용서의 반복은

자비스런 부처님과 자애하신 예수님에게도

따귀 맞을 일입니다

진전이 없는 생활은 권태로움을 더 하고

믿음 없는 자만은 오만을 부르더니

배움이 없는 답보는 결국 위선을 잉태 할 뿐입니다

 

그 잉태가 만들어내는 다툼은

보기 싫게 찢어지고 빛바랜 붉은 꽃무늬 스커트자락이고

어린 아해 먹다 거리에 떨어뜨린

고추장 묻은 떡볶이 한 조각 일 뿐입니다

 

현실은 항시 회상에 목이 마르고

흑백 무성영화 돌아가는 소리만 그리워하더니

근처에 잡히는 건 호불호好不好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움츠려진 허리는 펼 생각조차 안 합니다

 

거짓이 가슴 한 귀퉁이에

이기적 뭉텅이로 자리하고

내 가면이 얼굴 그득한 웃음으로 포장할 때

나는 그저 거죽만 산 것이지

죽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정직한 나의 할 말이

목구멍 지나 혀를 통과해 당당히 걸어 나오려 하는데

꽉 다물어진 가식의 기운은 왜 이리도 강한지

핏자국도 없이 입가에 딱지가 벌겋게 슬었습니다

 

'싫다 좋다' 하지 말고

'그런 가 저런 가' 하려 합니다

 

누구 보고 말하고 싶고

누구 보고 사정하고 싶으나

가증스럽고 사악한 많지 않은 단 몇 개의 세포는

그냥 이글거리며 죽을 줄도 모르고

마냥 붙잡아 당기고 있습니다

 

곪아버린 그 붉게 성긴 딱지를

아프지만 터트려 그냥 놓으렵니다

혹여 방황하다 제풀에 못 이겨 뛰쳐나갈지 모르는

그 사악한 세포를 위하여

 

    (박산 시집 '노량진 극장'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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