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도시 ㅡ
비 오시는 아침 이국의 길을 걸었다
중세로 통하는 門 ‘아르코 다 포르타 노바’를 지나 동네 사랑방 카페 아르코에 갔다
이른 시간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 살짝 당황한 브라운 헤어 쥔 아줌니, 마리아! 마리아! 딸을 불렀다
따뜻한 에스프레소 1유로 나타 0.8유로, 직전 도시의 비싼 물가와 비교됐다
빗줄기가 세차졌지만 나그네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현재를 외면한 온통 과거인 브라가 대성당에 들었다
벽화, 이끼 낀 석물, 천정의 그림들, 황금빛 파이프 오르겐 등과 침묵의 수도자 같은 방문객들 모두가 경건했지만
모든 이들이 기도하는 이 도시에서 니체주의자인 나는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유일하게 힘차고 우렁찬 종소리에 발길을 돌렸다
날이 개기 시작했다
아담한 ‘산타 바바라 광장’에 핀 꽃들도 각각의 빛깔로 기도 중이다
수도원에서 기도하던 햇살이 나타났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저마다 다르게 움직이는 중이다
정원 한 귀퉁이 찾아 기도하듯 앉았다
이 나라 속담에
'인생의 마지막은 브라가에서 기도하며 보내라' 했다는데
기도할 줄도 모르니
어찌 보면
속 편히 다닌다
(포루투갈 북부 브라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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