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금연禁煙

박산 2015. 7. 7. 15:50

 

금연禁煙

 

누군가 내게

"여지 것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이 무엇이냐?" 고 묻는다

뭔가 내세울 정도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

특별히 잘 한 일도 없는 나 같은 범부凡夫에게는,

정말 대답할 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한 번 더?" 하고 되묻는다면

돈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고…

뜸을 들이다가 "굳이 말하라니…" 하고는

"담배 끊었던 일"을 말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정말 담배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시쳇말로 대가리 피도 안 마른 까까머리 검정교복시절부터

담배는 사내구실을 빙자하여 어른임을 자청하는 디딤돌노릇(?)을 한다고 생각했다.

끼리끼리 모인 골방이나 운동 후 으슥한 장소에서 스릴 있게 한 대 꼬실리며(?)

때론 매운 연기에 콜록 거리기도 하고 이 친구 저 친구 번갈아 한 모금씩 빨아 보며 배우기 시작한 담배,

교복 호주머니에 담배가루(이걸 X가루 혹은 부시기가루 라고 했다)가 남아 있을까 집에 들어가기 전 문 앞에서 탁탁 홀라당 까뒤집어 털어버리곤 했다.

 

70년대 말, 대학을 거쳐 사회에 나와서도 그렇게 배운(?) 담배가

햇수를 더해 노련해져 어딜 가서 누굴 만나든 필수적인 인사 도구(道具)가 되어

우선 담배 한대 권하고서야 대화가 되는 시절이었다.

평생 영업을 해 온 나 같은 사람이나 그에 준하는, 많은 사람들을 접촉해야 하는 직업을 갖은 분들에게는 자연스런 '대화의 매개체'로 편리함이 있었다.

 

무언가 골똘히 고민해야 하는 순간의 절실함에 적합하게 필요 할 뿐 아니라

망(亡)해서 벼랑 끝에 매달려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서도

그 꿀맛 같은 연기 몇 사발은 생명을 연장해 주는 듯 했다.

실제로, 강가에 신발 벋어놓고 인생 하직하려다가 마지막으로 피어 문 그 담배 한 가치가

순간적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 재기에 성공한 분 이야기도 있다.

 

담배 한 가치가 사람을 살린 경우다 .

 

어디 그 뿐이랴 나 같은 술꾼들에게는

매우면 매워서 짜면 짜서 한 가치 담배가 입을 순환시켜준다.

소주에도 막걸리에도 정종대포에도

우아하게 휘어잡은 와인 한 잔에도

심지어는 얼음 찬 양주잔 손바닥 비벼 열 식혀 마시면서도

목구멍 깊숙이 넘어가는 담배 연기는 각각에 찰떡궁합이다.

 

넥타이맨 양복쟁이도 복잡한 시장을 누비는 노동자도

손톱에 뻘건 매니큐어가 깔끔하게 칠해져있는 아가씨도

주체 못할 큰 가슴을 둔탁하고 새까만 브래지어가 덮고 있는 대포집 늙은 아줌마도

바윗돌 주름 보다 더 얼키설키 이마빡에 가로세로 그어놓고

"뻥이요!" 소리 질러 터트리고는 흐트러진 강냉이 쪼가리 실실 모으며 한 가치 피워 무는 뻥튀기장사도

각각의 손가락 사이에 끼어있는 그 한 가치 담배는 나름대로 한 몫씩 삶의 잠깐 쉬어가는 의자처럼 편안해 보인다.

침 묻혀 꽉꽉 씹으며 피던 입술자락 넌지시 마른침 호호 불며 피어 물던 간에.

 

영화나 소설 시詩를 더 재미있게 보고 읽으려면

우선 담배 한 가치 물고 연기에 묻어나야 폼이 나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야 더 영화답고 더 소설답고 더 시다워 진다고 믿었다.

그냥 그런 줄 알았다.

 

나의 금연 이야기는 약 1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2월, 당시 미국회사 일을 하고 있던 나는 신년 미국본사 마케팅 회의가 있어

Michigan주 북부 Muskegon이라는 시골 동네의 공장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해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그야말로 집이 거의 눈에 덮여있을 정도였고

겨우겨우 주요도로만 눈을 치워 놓고 사람이 차에 겨우 끼어 거북이걸음의 속도로간신히 오고 가고 할 정도였다.

 

숙소로 정해진 B&B (Bed&Breakfast/개인이 민박 식으로 운영하는 집. 아침을 주인집 식구들과 같이함)는 집안 전 공간(2층집/방이 8개)을

담배 금지구역으로 지정 해 놓았고 마음씨 좋아 보이는 주인 마나님(하얀 살집이 넉넉한 전형적인 미국아줌마)은 들어가는 날부터

"나는 담배 알레르기가 있으므로 2층(내가 묵게 되는)에서 담배를 피워도 금시 알 수가 있다"고

초장부터 내게 노골적으로 주의를 주었다.

"에이 공연히 B&B를 잡았구나 호텔로 갈 걸" 하고 후회 해 본들 이미 때는 늦었다.

역사나 문화에 관심이 많아 가급적 B&B 같은 현지인들과 접촉하여 대화를 즐기는 나의 취향이

 <금연의 고통>으로 이어질 줄은 전혀 예상을 못 했었다.

전에 왔을 때 묶었던 B&B는 주인이 스모커smoker라서 같이 얼마나 맛있게 빨아대며(?)

마당에 불 피워 바비큐 구어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었는데.

 

당시 하루 두 갑의 중증헤비스모커 a heavy + chain-smoker에게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자기 전에는 반듯이 한 두 개비를 빨아야 안정된 수면을 취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흡연의 욕구가 일어날 때 마다

옷 다 주워 입고 그 춥고 깜깜한 밤에(정말 그곳은 북부 호수가 'michigan lake side 라서, 집이 듬성듬성 숲 속에 위치하고 있어 더 춥게 느껴진다)

산등성이 같은 나무( 집 나무도 엄청 크고 높다)로 둘러 쌓여있고 하얀 눈이 집채같이 사방팔방을 두른 밖으로 나와 오들오들 떨면서 혼자서 처량하게 담배를 피워 물자니

끽연(喫煙)의 기쁨에 앞서 담배 한 개비에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던지,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본전 생각(?)이 나는 아쉬움에 다시 연거푸 또 한 개비 빼어 다 피고서야

조심조심 슬금슬금 미끄러지지 않게 깡총 발 디디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새가 딱 야밤에 도둑놈 꼴 이였다.

 

그 노무 담배 때문에.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이 이렇게 구차하게 느껴지는 게, 어제 오늘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1990년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만해도 식당이나 공공장소에 smoking area(담배 피는 장소)가 남에게 눈치 안 보아도 될 정도로 적절히(?) 분배되어 있었었는데 일 년 다르고 이 년 다르더니 급기야 대다수 식당들은, 들어가자마자 화장실 입구나 아니면 구석 쟁이 한 구석 혹은 창고 입구 같은 우리말로 하면 아주 후진 구석에만 smoking seat를 마련하니 나를 저녁 초대하는 대다수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본사 직원들은 오로지 smoker인 나를 배려 해 이런 후미진 좌석을 예약하고 같이 앉아 식사를 해야 하는 게 얼마나 곤욕스러운 일이었겠는가?

그들에게 나는 엄청 달갑지 않은 손님임에 틀림없었다.

 

서양 사람들이란, 말(talk)로 대놓고 싫은 척 표현 안하는 바를 모르지 않지만

우리 속담에 ‘쩍하면 짝’이라고 그들의 못 마땅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담배 피우는 층은 백인들이 적었고 남자 보다 여자 흡연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히스패닉이나 아시아계 일지라도 경제적 안정 층에서는 흡연자가 줄어드는 추세였다 . 그런데, 그 당시 나 역시 몸에 이상신호로 인하여 담배 끊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중이었다. 위-십이지장이 좋지 않았고 혈압도 너무 높아 항시 두통이 있었고 신경계통에서도 문제가 있어서 술을 먹지 않고서는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의 alcoholic증세(이 부분 집사람은 아직도 증세가 아니고  완전 alcoholic이라고 내게 말하고 있지만 나는 애주가였을 뿐 이라고주장하고 있다)가 심했었다.

 

어쨌든 이런 중에 출장을 마치고 귀국 시 뱅쿠버(캐나다)에서 공부하고 있던 딸에게 들러 일주일 머물고 집사람(미국에서 먼저 들어가 있던)하고 서울로 오는 비행기를 탔는데, 이날따라 뱅쿠버 공항을 이륙하자마자부터 흡연 욕구가 심하게 들기 시작하면서 얼굴에 홍조(紅潮)가 일기 시작했는데 정말 앞이 혼미 해질 뿐만 아니라 입안이 건조해지기 시작하면서 심장 박동소리도 커 가는데 가슴에 마치 모터를 달아논 것같이 쿵쿵 하고 울리는 것이 아닌가.

 

정말 답답하고 난감해져서 손목시계를 보니 이제 이륙한지가 두어 시간 밖에 되지 않았고 남은 비행시간을 따져보니 아직도 8-9시간을 더 가야 한다.식은땀은 나고 정말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집사람은 걱정이 되는지 생수를 스튜어디스에게 요청하여 내게 먹으라고 주는데 그것도 한 잔이지 마실수록 더 흡연 욕구만 점점 더 커 질 뿐 이었다.

 

정신을 똑 바로 차리려고 애쓰면서 포도주를 한 모금 한 모금 입에 물고 오물거리며 힘들여 씹고(?)있는데도

식은땀이 계속 흐르니 옆자리에 이웃해 앉아있던 분이 내게 "왜 그러느냐?"고 걱정스레 묻는다.

초면의 사람에게 창피스럽기도 하였지만 그 분 말씀이 나를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뭔가 몸에 이상이 있는 것 아니냐?"고 자꾸 말을 시킨다.

담배가 피우고 싶어서 그런다고는 차마 말을 못하고, 오랜 출장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고 얼버무렸는데

시간이 갈수록 흡연 욕구가 더 강해져서 급기야는 혼비백산으로 정신 나간 상태였다.

 

다시 마음을 다 잡으려 무릎에 힘을 주고 단전 중심을 잡고 손가락 마디마디를 볼펜으로눌러가며

종종 배우고 수련했던 단전호흡법으로 조절했으나 별무효용이었다.

식은땀은 계속 흘러내리고 옆에 앉은 분(인사를 해 보니 엘버타대학 교수이신데 한국대학에 교환교수로 가고 있는 중, 이런 인연으로 나중에 우리 아이 대학 갈 때 advisor역할까지 했다)은 거듭 "괜찮으냐?" 고 물으니

그때는 창피함이고 체면이고 뭐고 없어 "사실 담배 때문에 그렇다" 고 이실직고 하니 그 교수님 왈(曰),

스튜어디스에게 한번 특별부탁(special request) 해 보자고 하더니,

바로 불러 "이러저러하니 사람 잡겠다 그러니 이 분(나)한테 특별히 화장실에서담배 한대만 피우게 해줄 수 없겠는가?"하고,그러나 예상 했던 대로 그 즉시 일언지하에 보기 좋게 거절을(그렇게 예뻐 보이던 스튜어디스가 그때부터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당하고 넋 나간 얼굴로 그렇게 또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하다가 김포공항에 도착 했었다. 이 부분을 훨씬 더 장황 하게 쓸 수 있지만 다시 생각하기 싫어 이쯤에서 끝낸다.

 

아마도 내 일생에 그렇게 어렵고 + 속 타는 비행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도착한 그날 김포공항은 2월의 이른 봄비가 진눈개비를 동반한 채 내리고 있었는데 세관 통관이고 뭐고 하나도 정신이 없었던 나는 어서 이 공항을 빠져나가 담배 피우고 싶은 욕망에 짐이고 뭐고 집사람에게 몽땅 맡기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실내로부터 100m 달리기 경주 하듯이 후다닥 공항 밖으로 뛰쳐나와 혼 빠진 정신병자마냥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연거푸 두 대를 피우고 다시 또 한 개비에 불을 붙이고 나서야 내 자신이 얼마나 담배 한 개비에 가련하고 한심한지를 하는 자책이 들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이 금단증세의 경험과 계속되는 건강 이상 신호로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나의 병명은 이미 알고 있었던 위염 십이지장궤양 그리고 고혈압으로 나왔다.

검진 일주일 후 담당의사와 최종검진 결과를 상담 시, 친절한 담당의사는 여러 가지 의학적 설명을 마치더니 갑자기 내게 다가와 내 호주머니를 뒤지는 게 아닌가?

얼떨결에 호주머니 속에 있는 담배 라이터를 강탈(?) 당하고 멋 적게 웃고 있는 내게 의사 말하길

 

" 선생의 지금 40대 중반(그 당시)의 나이는 모든 세포가 성장을 멈춘 시기이고   

위염과 십이지장궤양은 위와 십이지장이 쉬어야 하는데 자꾸 담배를 피어대니 

산(酸)분비가 계속되어 위와 장의 쉴 시간을 주지 않고 괴롭히고 있으며   

고혈압까지 있는 환자가 과도한 술에다 담배까지 피워대니 언제 혈관이 터져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며 본인이 급사(急死)하길 원치 않으면

이 순간부터 담 배하고는 인연을 끊어야합니다"

 

뭐, 담당의사의 위와 같은 공갈(?)에 넘어 갔다기보다는 내가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자신의 공감대가 있던 차라,

그리도 아끼는 담배를 끊기로 결심하였다. 그런데 말이 쉽지 수십 년을 피어 오던 담배를 어찌 하루아침에 끊을 수 있는가?

 

비교적 독(?)하다는 소릴 듣는 사람이긴 하였지만 정말 어려운 일 이었다.

먼저 사무실에 재떨이를 치웠다. 제일 먼저 여직원(비서업무 포함)에게 다른 직원들에게도 내 방에서 절대 내가 없어도 담배를 못 피우게 지시했다. 금연 껌도 씹어 보았고 금연초도 피워보았는데 내 경우에는 별반 도움이 안 되었다. 금연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아주 신뢰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금연사실을 통보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면 아내 아이들(자녀)  친한 친구 직장상사 직장동료 직장후배 여비서(이 부분 아주 효과가 크다.

해 놓은 말이 있어서 자존심을 지켜야하고 매일 보고 같이 있는 시간이 많으므로 감시 효과가 크다)

자주 가는 술집 종업원 등등에 광고 하듯이 떠들어야한다.

그러면 도처에 감시자들로 흡연 욕구가 일어 날 때면 모두가 웬수(원수)로 보이길 수차례

몇 날 몇 달을 겪어야한다.

 

만약 금연을 결심한 사람이 담배를 피운 현장을 목격했다면 아주 혹독하게 자존심이 팍 상할 정도로 감정을 건드려 경고를 해야 한다. 이것이 큰 도움이 된다. 나 역시 몇 번을 자존심 상하는 경험을 했는데 한번은 내가 데리고 있는 직원이 술자리에서 담배를 넌지시 권하는데 안주가 매운-낙지복음을 먹은 탓에 엄청난 흡연의 욕구를 참지 못해 무심코 한대 빼어 물었었는데 이 친구, 그 다음날 회의석상에서 하는 말이 "담배 끊는 거 말로 백번 하는 것 보다는 담배를 줄이자고 현실적으로 접근 하는 게 훨씬 더 좋지 않겠습니까?" 하면서 슬쩍 농을 치는데 아무리 부하직원이라도 체면을 구긴 난 얼굴만 벌게져서 아무 대꾸도 못하고 말았었다.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금연에 하나 더 힘들었던 게 아침이면 조간신문에 담배 한 가치가 있어야 습관적으로 배변을 할 수 있었던 내게 변비가 올 정도로 힘들었었고 술 마시고 귀가 후 담배 피우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해 도둑고양이 모양 몰래 베란다에 나가 피우면서도 자존심은 있어서 마나님이나 아이에게 들킬까 전전긍긍하는 꼬락서니라니! " 끊었다!"  큰 소리 다 처 놓고 집안 어딘가에 담배와 라이터 숨겨놓고 사무실-책상서랍 제일 은밀한 곳에 역시 비상용으로 숨겨놓길 몇 차례 … 이외에도 이 보다 더 비참하고(?) 처절한 경험을 많이 했으나 그만 언급하기로 하고

흡연자에게는 피(?)같은 담배를 정말 흡연욕구를 못 참아서 담배 한 갑 몰래 사서 한 가치 꺼내 몇 모금 피었다가 이내 후회하고 '열아홉 개비' 그대로 들어있는 그 담배갑을 사정없이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리길 몇 차례인지 모른다. 버리는 걸 아까워하면 담배를 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한다 자신과 끊임없는 솔직한 대화로 매몰차게 흡연욕구를 이겨야한다.

 

개인적 편차는 있겠으나 이런 저런 경험을 치열하게 거쳐야 끊을 수 있다.

담배를 끊는 비법이 특별히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담배를 끊고 나면 가장 먼저 오는 신호가 몇 가지 있는데

 

* 아침에 헛구역질이 줄어든다

* 항시 머리에 두통이 있던 사람들은 두통이 차츰 사라진다

* 남자의 경우 아침 '발기-다래'에서 느낌이 온다

* 산을 올라 보면 숨이 덜 차고 가슴이 덜 답답해져온다

* 치아에 누런 니코틴이 끼어있지 않아 사람이 좀 더 밝고 깨끗해 보인다

* 위장병환자는 속 쓰림이 훨씬 덜하다

* 간이 나쁜 사람들은 얼굴이 흰색으로 변한다

* 얼굴에 검(검은)-버짐이 없어진다

* 구강에 역한 냄새가 없어진다

* 피부노화가 느려짐을 느끼고 2-3년이 지나면 피부가 보다 탄력적이 된다

* 눈(眼)이 나빠지는 속도가 급속히 떨어진다

* 흰머리도 속도가 늦추어져서 서서히 진행된다

* 손톱 발톱이 빨리 자란다(그만큼 신진대사가 좋아졌다는 말이다)

* 성격이 신경질적인 사람은 보다 유~ 해 진다

* 손톱에 때가 끼지 않는다

* 신경계통이 특히 냄새에 예민해져서 사는 재미가 더 난다

* 손 발 저림이 덜하다

* 자신감이 생겨 대인對人관계가 더 원만 해진다

* 옷도 깨끗해지고 책상도 깨끗해지고 심지어는 핸드폰도 흡연자의 것 보다 깨끗하다.

* 비행기를 타건 기차를 타건 어떤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도 어깨가 쫙 펴^진다

* 이외에도 열거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 담배를 피우는 단점에 대해서는 저 위에 열거한 것에 그대로 반대로만 생각하면  별도로 언급 할 필요가 없다>

 

며칠 전 업무 차 음성공단을 내려가는데 내차에 나보다 여섯 살 위이신 K사장이 동승하셨다. 주행 중 내 눈치를 한참이나 살피신 연후에 "차에서 담배 한 대 피워도 되겠느냐" 고 해서 "잠시 기다렸다가 휴게소에 가서 피우시라" 고 답하고 그러고 + 그러길 = 한 참 후에 일을 보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또 차 안에서 담배 한대를 피우시겠다고 하여, 가만 생각해보니 나이도 나 보다 위이시고 ' 더 이상 못 피우게 하는 게 도리가 아닌 듯하여 "그러시라" 동의하여 올라오는 도중 담배를 두 개비를 피우셨는데 그 이후 약 일 주일간 예민해진 내 코는 <내 차에서 나는 담배 냄새>를 끈질기게도 용서 하지 않았다.

 

이후 K사장과 전화 통화에서 이 끈질긴 <내 예민한 코>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도 당뇨에 고혈압으로 금연하려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며 저녁을 한 끼 대접 할 터이니 끊는 비법을 이야기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그래서 회 한 접시 + 술 몇 잔 오고가며 한 이야기가 여기에 대충 언급 한 얘기이다 .특히 장년기(40대 이후)에 접어든 세대는 무조건적으로 담배를 끊어야 한다. 내 딸에게도 "술은 적당히 마시되 절대 담배는 가까이 하지마라"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 보면 못 살고 굶주리는 나라들은 흡연인구가 많은데 선진국들은 엄청난 규제와 비싼 담배 값으로 그들만의 금연천국을 만들어 가고 있다. 유독, 한국 중국 일본만큼은 사는 것에 비해 아직도 흡연 문화가 권장되고 있는 사회이고 그중에서 한국과 중국은 청소년 흡연인구가 늘고 있다니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특히나 우리의 여성들(특히 젊은 여성들)이 시대에 뒤 떨어진 사고思考로 흡연이 페미니스트의 상징인양 거리낌 없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있다.

 

딸들이여

아들들이여이제

제발 담배 좀 피우지 마시길

나이가 들면 후회 하나니

못사는 나라 어린아이들이 담배를 피운다지만

햄버거 피자먹는 부자 나라에서 태어난 이 땅의 우리 젊은이들이여 담배 좀 그만 피우길!

 

 

* 두 해 전 처남이 담배로 인해 수술을 했고 몇 년 전 형을 담배로 인하여 잃었습니다.

  오래 전에 썼던 글인데 조금 손보아 금연 결심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올립니다. 특히 담배를 아직 못 끊는 애주가 절친 김문수 변호사 이윤철 교수 등

  사랑하는 내 친구들 금연을 실천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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