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무화과

박산 2020. 9. 21. 10:51

「무화과」 (이광무 2020)

 

 

「무화과」

 

누가 내게 가장 맛있게 먹은 과일을 고르라면, 단연 2018년 압해도 과수원에서 먹은 무화과라 말할 것이다.

아삭하게 씹히는 씨앗 덩이에 끈끈한 당액이 골고루 버무려져서 껍질의 부드러움과 함께 입에 스며들면서

혀를 감아 부드러움을 더한 목 넘김이 황홀했다.

 

'왜 이렇게 맛있는 우리 과일을 그동안 못 먹었지' 란 생각이 들었다.

 

캄보디아 여행 중에 맛보았던 망고스틴, 자줏빛 껍질을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 껍질을 벗겨 향긋한 흰 과육을 꺼내 입에 넣으면 달콤함이 순간적으로 혀를 점령시키는 첫 키스 같은 맛, 이 맛 역시 얼마나 반복하고픈 욕망을 부르는 혀의 중독성이 있었던지씨엠립 시장에서 한 봉지 욕심껏 가득 채워 산 망고스틴을 호텔 방에서 입에 단내가 날 때까지 정신없이 먹을 정도로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이즘도 우리 마트에서 수입된 망고스틴이 눈에 띠면 혹시나 하고 사 먹어 맛을 보았지만 전혀 기대하는 그 맛이 아니었다캄보디아를 다시 가고 싶은 이유는 앙코르왓트가 아니라 미치도록 맛나게 먹었던 망고스틴을 먹기 위함이다.

 

압해도 무화과가 그랬다.

세일즈맨으로서 영업적인 접대로 고급 술집을 내 집 드나들 듯 자주 다니던 시절,

건조된 수입 무화과가 땅콩 건포도 등과 '마른안주'에 섞여 나와 간헐적 씹는 맛을 보긴 했었지만

무화과의 진액이 촉촉하게 껍질에 배어있는 신선한 참맛은 몰랐었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남녘땅 전라남도에서는 오래전부터 무화과가 재배되어 현지인들 위주로 무화과를 즐겨 먹고 있었다단지 무화과는 말랑말랑한 과일 특성 상 운반의 어려움이 있어 나 같은 먼 거리 사는 서울 사람이 맛보기는 당연 어려운 일이었다.

 

2018년 가을 목포에서 압해도를 거쳐 무안 여행을 하기 위해 압해대교를 건넜는데

마침 거리 곳곳에 펼쳐진 무화과 농장에서 맛도 생소한 무화과를 팔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그냥의 호기심으로 무화과 5박스를 구입했다농부가 가면서 차에서 맛보시라 건네준 무화과를 입에 베무는 순간 입안에 퍼지는 달콤함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

 

 

집에 돌아와 가져온 무화과를 함께 나누었던 지인에게 ''세상에 이리 맛있는 과일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라고 감사의 인사를 받을 정도였고 아내는 ''잊지 말고 내년에도 꼭 사왔으면 좋겠다'' 고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2019년 가을 무화과 수확기, 기대를 잔뜩 품고 압해도 농장을 찾았지만 유감스럽게도 기대에 못 미치는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 황홀했던 2018의 그 맛이 아니었다.

농부의 말에 의하면 올해는 무덥지가 않아 당도를 높이는 태양열이 부족한데다가 태풍까지 겹쳐서 맛도 수확량도 모두 떨어졌다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농민의 겸손하고 미안한 얼굴을 위로하기 위해 5박스를 또 샀다.

농사를 전혀 모르는 위인이긴 하지만 농사가 어찌 농부의 힘만으로 되겠는가, 하늘이 도와야 한다는 天理를 어렴풋이 간접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맛이 뛰어나지 않으니 누구와 나눌 생각도 못하고 냉장고에 넣어 식구끼리만 먹었지만 

그래도 폭 곰삭아 진액이 끈적이고 한 입 베어 물면 무화과 특유의 달콤함을 발산하는 중이라

우리집 아침 식사 빵+커피와도 궁합이 잘 맞았다.

 

 

2020은 바이러스로 어려운 시국이지만 압해도 무화과 농사만큼은 신안 앞바다 섬과 섬 사이를 비추는 아름다운 저녁놀 빛이 도와 고운 자줏빛 무화과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미뢰가 황홀함을 다시 즐길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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