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개 폼

박산 2020. 12. 24. 08:21

사진: 서산 간월암에서

「개 폼」 ㅡ

시쳇말로 '가오다시', 뭐 말 한 마디 하려면 어깨에 뻥이 잔뜩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창 젊은 때는 빈정이 상해 마주하기도 싫었지만 늙어 가면서는 우선 딱하고 보기에도 이 사람 왜 저러지 하고 측은해 보일 뿐입니다.

오래 알고 지내는 A가 그렇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이 있어 누군가에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사니 어찌보면 늘그막 늘어진 팔자 임에도, 얘기 중에는 습관적으로 대화 상대인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예전 잘 나갔다는 뭐뭐하는 동창 얘기에 친분 있다는 정치인 이름을 자주 들먹입니다.

그저 변방에 쪼그려 앉아 잡문이나 끌쩍이고 있는 내 짐작으로는 문학이야 그에게 어려울 거니 그저 여행이나 막걸리 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헤어지면서 다음 만남을 진지하게 기약하는데 나는 그냥 건성 인사를 합니다, "잘 가고 잘 살아라!".

중마고우 현역 모범택시 운전사 월암과 동대문시장 원단 장사 은퇴한 정주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개 폼은 안 잡습니다. 왕배덕배 시장 한복판 좌판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면서 함께 늙어 가는 마누라 걱정에 장성한 아이들 사는 얘기 끝에 꼭 하는 얘기 "우리 어디 갈까" 하는 궁리에 궁리를하다 마지못해 헤어져서도 입가에는 웃음이 실실 나옵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남 얘기 할 거 없습니다.
살 날이 살아 온 날들보다 훨씬 작게 남은 우리들, 서로의 얘기만으로도 부족한 날들입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성적 TV 사기  (0) 2021.01.29
내 사랑하는 벗 月岩  (0) 2020.12.27
전관예우  (0) 2020.12.07
무화과  (0) 2020.09.21
금연禁煙  (0) 2015.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