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
머릿속 지도에서 사라졌다
있긴 있었는데… 분명 내 고향이
실망으로 내쉰 한숨 접으려는데
어렴풋이 나타났다
강 넘어오는 기차 소리
콩나물국 끓는 냄새 넘치는 부엌
나는 두툼한 솜이불을 덮고 있다
참새 소리
두부 장사 종소리
길거리 사람들이 개미처럼 하나둘 나타났다
표정이 없고 색깔은 온통 회색이다
나는 마당 절구통 옆에서 아령을 들고 있다
우리 집 양철 대문 위를 등나무 줄기가 감고 있다
기와지붕 위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
골목에 동민이 누나가 교복을 입고 나왔다
감나무 집 솜틀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헛기침 소리가 익숙하다 아버지, 아버지다
갑자기 배에 힘이 들어갔다
사육신묘지 앞 목욕탕 욕조에서
현인 선생이 신라의 달밤을 노래하는데
노래하곤 담쌓은 아버지도 따라 부른다
강물에 돼지 한 마리가 둥둥 떠내려온다
만년고개 영아원에서 아기들이 우유병을 빨고 있다
키 큰 흑인 MP와 사는 금순이 누나가 다니러 왔다
갑자기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아까 떠내려가던 그 돼지가 내 품에서 꿀꿀대고 있다
갑자기 고향이 사라졌다
고향이 된 아버지가 보고 싶다
착한 일 많이 해야 고향이 다시 나타날 것 같다
예순 넘어서 아홉 살 소년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이게 어딘데…
잃어버렸던 고향에 다녀온 게
고맙습니다, 아버지!
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중 (2015, 황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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