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251】
2022년 9월 30일 7시(매달 마지막 금요일)
종로구 인사동길52번지 인사14길
詩/歌/演(02) 720 6264
쥔장:김영희010 2820 3090 /이춘우010 7773 1579
1호선 종각역→안국동 방향700m
3호선 안국역→종로 방향400m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1929~ )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아니면 운명?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250】
2022년 8월 26일 7시(매달 마지막 금요일)
1. 수성동 계곡에서: 양숙
장마 끝나는 날이거나
서너 시간 비 긋는 날
모처럼 잠방이를 걸치면
운동화가 문을 밀칠 기세로 대기한다
바람도 잠자고 습도 높아 짜증나려지만
승차하자마자 안경이 적응하느라
앞이 뿌옇다가 제대로 보이는 순간
지하철 터널 잡음은 이미 계곡 물소리다
겸재나 중섭과 구상 굳이 부르지 않아도
홀로 호젓하게 즐길 수 있고
도심에서 걸어서 갈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호사인가
폭포에 걸터앉은 개구쟁이 대신
어릴 적 나를 앉히고선 발 담그고
발가락에 고향 친구들 이름 붙여주니
발가락마다 힘주어 꼬물꼬물
이야기꽃 피우며 아득한 과거로 간다
결코 결단코 되돌아갈 수 없지만
지금의 나도 그런대로 뿌듯하다
내 발로 걸어서 여기까지 왔고
혼자서도 잘 놀 수 있으니까
* 진흠모 편집인/ 시인/ 인사동TV 운영위원
* email: 55yasoo@hanmail.net
2. 무더운 여름날: 김효수
어찌나 더운 여름인지 감나무 덮고 있는 푸른 잎사귀들 햇볕에 반짝인다
시원한 그늘에 앉아 있어도 몸에서 연거푸 땀방울 꿈틀꿈틀 기어 나온다
지금보다 나이 어린 그래서 아득히 지나간 젊은 시절 영화처럼 떠오른다
쨍쨍한 햇볕이 무덥게 쏟아지는 여름날 지금보다 더 덥게 느끼던 여름날
사랑하는 사람과 양산도 없이 무덥지도 않은지 어깨를 붙여 팔짱을 끼고
얼굴 마주칠 때마다 뭐가 좋은지 웃어가며 아무것도 부럽지 않았던 들길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지금 누가 하라면 내가 미쳤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땐 사랑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고 항상 당당하였다
수많은 세월이 쉬지도 않고 거침없이 흘러가고 어느새 중년이 되다 보니
피 저절로 끓어오르는 푸른 시절의 사랑과 노을처럼 저무는 시절의 사랑
비교해 보면 마음으로는 같을지 몰라도 몸뚱이는 전혀 다른 사랑을 하니
세상 살다가 허전하여 거리 떠돌아다닐 때 젊은 시절이 떠오르는가 보다
* 진흠모/ 시인
3. 그리운 바다 성산포: 낭송 박향아/ 시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잠이 들었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 바다가 절망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놔두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 낭송가
4.우도가 성산에게 묻는다: 송윤식 시 유현숙 낭송
5. 인천에서: 조철암
인천역에 먼저 도착한 친구들과
청나라와 일본의 옛 조계지 경계 지점에서
구한말 치욕의 역사를 돌아보고
순교자 성지 순례 성당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
10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일제 강점기 건물이 잘 보존된 거리를 걷다가
한국 현대 문학관에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이상의 날개
그리고 옛 영화 포스터 속의 허장강 이예춘
개성있는 원로 배우들을 만났다
연례 행사인 여름의 별미 민어 횟집으로
재작년에는 다섯 작년에는 넷 오늘은 세 명
함께 자리 못 한 친구들 생각으로
아쉬움 속에 오붓하게 한 잔
'커피는 핑계
너랑 오래 있고 싶은 핑계'
분위기 있는 찻집에서
'애증의 강'을 들으며 차분한 마무리
* 진흠모/ 낭송가/ 시인
6. 웃음 질구이: 노희정
그저 웃지요
수십 년 지나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
팔 들고
속 비우며
추워도
더워도
주름 깊어 가며
뛰어가는 삶 속에
쉬어가는 삶 속에
그저 웃지요
한 손에 책 들고
다른 한 손에 LED램프 켜고
대박 막걸리 통 입에 물고
태극기 높이 들고
그저 웃지요
조릿대도 서걱거리며 웃고
솔잎도 구름도 바람도 산새도
부처님도 예수님도 동참하여 웃으시니
그저 좋지요
너와 나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그저 웃지요
< 김주호 조각가 전시장에서 >
* 진흠모/ 시인/ 육필문학관 관장
7. 목욕탕에서 만난 갑장: 낭송 유재호/ 시 이생진
목욕탕에서
탕에 들어가 빨가벗고 마주 앉은 노인과 인사를 나눴다
알고 보니 둘레길 산책 때 만난 갑장인데
빨가벗고 인사했다
불알친구? 목욕탕에서 진짜 불알 내놓은 친구를 봤다
5,6세의 어린 불알이 아니라
89세의 불알
신기하지도 흥미롭지도
오히려 슬프기만 하다
못 본 척하고 얼른 말을 돌렸다
아니 당신하고 아침 산책하던 그분은? 하고 물으니
그분은 입원했다고 한다
나이 89에 입원했다고 하면
뵙기 어렵겠네요로 말을 마감했다
그도 수요일에 목욕탕에 왔는데
우리 둘도 언제까지 목욕탕에 올지 모른다
아니 둘 다 오지 않는 날이 올지도
80 넘은 갑장들의 언어는 목욕탕 물소리보다 약하다
그는 때를 다 씻지도 않고 나가겠다 했다
늙은 몸은 닦아도 닦아도 때가 나오는데
갈 땐 마른 몸에 때만 가지고 가는 것인데
그는 미리 탕에서 나갔다
-시집 <無緣故>에서
* 진흠모 가수/ 낭송가
8. 아내와 나 사이: 낭송: 김미희/ 시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아니면 운명?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 진흠모/ 낭송가/ 시인/ 인사동TV 운영위원
9. 어머니의 물감 상자: 낭송 김경영/시 강우식
어머니는 시장에서 물감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물감 장사를 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온갖 색깔이 모여있는 물감 상자를 앞에 놓고
진달래꽃빛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진달래 꽃물을
연초록 잎새들처럼 가슴에 싱그러운
그리움을 담고 싶은 이들에게는 초록 꽃물을
시집갈 처녀들에게는 쪽두리 모양의 노란 국화 꽃물을
꿈을 나눠 주듯이 물감 봉지에 싸서 주었습니다
눈빛처럼 흰 맑고 고운 마음씨도 곁들여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해종일 물감 장사를 하다보면
콧물마저도 무지갯빛이 되는 많은 날들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동저고리 입히는 마음으로
나를 키우기 위해 물감 장사를 하였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이 지상에 아니 계십니다
물감 상자 속의 물감들이 놓아 주는
가장 이름다운 꽃길을 따라 저세상으로 가셨습니다
나에게는 물감 상자 하나만 남겨 두고 떠났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운 색깔들만
가슴에 물들이라고 물감 상자 하나만 남겨 두고 떠났습니다.
* 진흠모/ 낭송가/ 라인댄스 강사
10. 이덕삼: 김태경
스물한 살의 꽃다운 나이
당신의 쓸쓸한 무덤
상하이 만국공묘 풀밭에 누워 있어라
가시덤불 같은 세월
피묻은 태극기 가슴에 품고
깃봉에 휘날리는 날까지
당신은 맨발로 우리의 언 겨울을 사셨어라
살아도 죽어도 외로운 혼백이여
무성하게 풀이 자라듯이
당신의 가슴에 품은 독립은 뜨거웠는데
아직도 먼 그리움으로
뒤척이는 슬픔에 비가 내립니다
이제라도 함께 싸운 동지들
분향으로 되살리는 묵념의 자리
그 곁에 누워 당신의 삶도
피눈물 흘린 날보다 눈부셔야 합니다
돌아오소서 절규로
그토록 사무치게 사랑한 나라로
상하이 만국공묘에서
이제라도 돌아와 당신의 꿈
한없이 펄럭이는 태극기 아래에서
설움도 다 내려놓으소서
11. 정수리 탓: 박산
숨차게 헉헉 공원 계단을 오르는데
내려오시던 외양이 점잖은 어르신께서
"어르신! 보건소 이 쪽으로 내려가나요?"
얼떨결에 "아 예,,,..." 알려 드리고는
‘어르신?’
‘저 어르신께서 내게?’
얼굴 가린 마스크 탓이련 하다가
소갈머리 휑한 정수리 탓이지 했다
* 진흠모 이끎이/ 시인/ 자유 기고가/ 인사동TV 방송주간
12. 반 클라이번 3관왕 임윤찬: 이생진
미국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열린 제 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자로 국내외에 낭보를 전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18세
그의 노력?
그의 도취?
아니면 그만의 신드롬?
하루 12시간 연습을 여러 해
꿈이라면 산에 들어가 피아노와 사는 거
쉬는 시간엔 헬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단테의 <신곡>을 읽고
단테의 <신곡>은
책이 나오는 대로 읽어
달달 외울 정도라니
그러니 뜻이 이뤄지는 것은 당연한 일
이런 시를 써놓고 나도 남은 시간에
뭘 할까 하다가 잠이 들었다
* (1929~ ) 시 앞에서는 결사적인 떠돌이 시인
생자 담론: 최근 목욕탕에서 넘어졌지만 이렇게 멀쩡함에 감사합니다.
생자 동정:
* 강원도 화천 운수골 허진 시집 『전원일기』출판기념회 참석(2022.08.27.)
* 『서귀포 정방동 이생진 시인과 함께하는 문학의 밤』강연 및 퍼포먼스
(2022.09.23.)
* 노희정 시인 시집 『영등포』출판기념회 참석(2022.09.26. 영등포문화원)
진흠모 동정: 1. 노희정 시인 시집 '영등포' 출판기념회
2. 이승희님 고남 30주년 합창단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