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기억 저편의 인도

박산 2022. 9. 19. 10:45

조드프르 시내 풍경 (인터넷 발췌)

 

 

기억 저편의 인도 ㅡ

업무 상 비교적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지만, 변하지 않는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인구 13억의 인도다. 마지막 월급쟁이 노릇 후 2000년부터 인도에서 Psyllium Husk, Guar Gum을 수입했다. 농산물로 각각 소화기관 보조제로 濃化劑로 사용되지만 보관이나 수입 과정에서 변질되기 쉬워 클레임(하자)이 잦은 생산품이라 사전 검수(inspection)가 필수다.

아무튼 이런 문제로 인도 북부 도시 조드프르(라자스탄州)에서 생산지 비카너 북부 지역까지는 편도 5시간이 넘는 여정이라 호텔 새벽 출발로 시작됐다.

계기판이 하나도 없고 사이드 미러조차 없어 굴러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의 자동차에 운전기사 포함 4인(한국인 2인 인도인 2인)이 타고 가는데, 과연 이런 자동차로 왕복 10시간 넘어 비포장도 있는 사막 한가운데 길을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왔지만 어쩌겠나 여긴 인도 아닌가.

아무튼 인도를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침부터 귀청을 찢는 시끄러운 조드프르 시내를 벗어나 거의 황량한 시골 사막 길을 달려갔다. 낙타 무리도 양떼도 만나고 어찌어찌 달려갔다. 어딘지도 모르겠지만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허름한 식당에서 난(화덕에 구운 밀가루 빵)을 향신료 진한 카레에 찍어 짜파티를 손으로 먹는데 어석거릴 정도로 모래가 씹혔다.

다시 또 황량한 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우려하던 자동차가 허걱 거리기 시작했다. 냉각수를 갈아 넣긴 했지만 열을 식혀야 해서, 우리로 말하면 작은 읍내 정도의 동네에서 쉬려는데 바로 옆에 운동장이 있는 학교가 있었다. 화장실도 갈 겸 들어가는데 누군가 반기며 나마스떼! 하고 인사를 건네 온다. 대화를 해보니 이 학교 교장 선생님이신데 시간되면 짜이 한잔하고 가라 권한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기쁜 마음에 우리 일행을 불러 함께 했다. 한국전쟁 때 폭파된 간장 공장 건물에 덧댄 교실에서 글을 배웠던, 1961년 내가 입학했던 초등학교 보다도 열악하게 느껴지는 허술한 교사 교무실 바닥에 앉아 교직원들과 통성명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수업 중이던 선생님들까지 궁금증을 못 참고 우리 대화에 온통 끼어들어 허허! 하하!, 동행한 K 사장과 나는 외국인 구경하기 어려운 깡시골 마을을 찾아온 신기한 외국인으로서 교사들에게는 호기심 대상이었다. 그 중 한 선생님 질문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어떻게 한국 같이 작은 나라가 자동차를 만들고 배를 만드느냐?, 나의 간단명료한 대답은 이러했다, "Most Koreans are diligent and study hard(대다수 한국인은 근면하고 교육열이 크다)". 어찌 생각해 보면 '너희는 그렇지 않다'는 무시의 의미인데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솔직히 말했다. 운동장에는 눈망울이 유난히 검게 초롱거리는 아이들이 뛰어나와 교문을 나서는 우리를 에워싸고 나마스떼! 를 외치고 있었다. 화장실 이용하러 들어간 학교에서의 1시간 남짓 얼떨결의 짧은 경험이었지만 아직도 기억 저만치 어렴풋이 그 때 그 장면들이 어른거린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사진과 동영상이라도 찍어 놓았을 터인데, 아쉽게도 지명과 학교 이름도 모른다. 그때 그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부모가 되었을 것이고 한국을 묻던 그 젊은 선생님은 교장이 되었을까?.

유감스럽게도 나의 생각은 그때 그 시골학교의 가난한 풍경뿐만 아니라 구정물 잘잘 흐르는 선생님들 그리고 학교 건물조차도 변한 게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1980년대 처음 가보았던 인도와, 2000년대와 적어도 내 눈에는 크게 변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 후 격변의 개발기를 겪고 살아온 한국인으로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나라가 인도다.

인도보다 더 열악한 나라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세대로서, 지금 우리가 잊고 사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인도는 자원도 많고 세계적 부자도 많다.  

며칠 전에 까맣게 잊고 살던 그 시절 기억 저편의 인도 거래처(금전 불이행으로 헤어졌던), 나를 삼촌이라 불렀던 사장 아들 비샬(Vishal)이 메일을 보내왔다, 다시 좀 도와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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