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중, 2011 우리글》
셋째 번 단추 -
오래전 미국 회사 일을 할 때 얘기입니다
부모가 러시아계라는 아시아 담당 마리나는
항시 가슴에 셋째 번 단추를
상대방이 보기 좋게 풀어 놓았지요
내가 보기에도
그녀의 크고 예쁜 가슴은 매력 덩어리였어요
움직일 때마다 그 흔들림에 탄력이 넘쳤지요
점잖지 못한 욕망을 잘 억제해야 군자라고
아주 잘 교육받고 자란 이 한국 촌놈은
그녀와 마주한 미팅 시간이 고역입니다
정면으로 마주 보고 얘기를 하자니
그녀의 가슴에 자꾸 신경이 쓰였지요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난감했지요
홀로 얼굴 붉히다가도 내심은
여성의 아름다운 가슴을 보고도 무감각하다면
그건 죽은 놈이나 진배없다고
스스로 자위했지요
어쨌든 매번 정면으로 마주 보지 못하는
부자연스런 나를 알아차렸는지
나만 보면 실실 웃는 마리나는
아주 내가 재미있다는 표정이 역역 했지요
보라고 열어 놓은 걸 그냥 보면 되는 데
그게 잘 안 됩니다
며칠 전 내 오랜 이태리 친구 클라우디오를
오랜만에 만났지요
말이 친구지 나이가 나보다 위이고
우리 나이로는 올해 환갑 입니다
갸름한 얼굴 날씬한 몸매에 착 달라붙는 양복이
전형적인 이태리 멋쟁이 남성 맵시가 여전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친구 역시 노타이 차림에
셋째 번 Y셔츠 단추가 열려 있었지요
까맣고 복슬복슬한 가슴 털이
그대로 들어나 보이는 거에요
여자는 민망해서 마주하기 힘들지만
남자도 뭔지 거북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인사동에서 순수 한국식으로 소주+밥을 먹으면서
동성끼리임을 빙자해 씨익~ 한번 물어 보았지요
“니 나이면 한국에서는 첫 번째 단추까지 다 채우고 다닌다” 하니
“무슨 소리야! 여자들이 내 가슴 털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제야 알았지요
미국의 마리나는 남자들이 좋아하니 단추를 풀고
클라우디오는 여자들이 좋아하니
단추 풀고 있다는 사실을요
나도 순간 여자들 좋아하라고
셋째 번 단추를 풀어 볼까
순간 푼수 없는 생각을 했지요
그러다 가만 생각해보니
뚱뚱이 뱃살에
보여줄 까맣고 복슬복슬한 털도 없으니
단추 꼭꼭 채우고 조용히 있기로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