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111+54

박산 2015. 7. 4. 10:50

  

 

 

 

                                  시월의 마지막 날 현승엽 가수와 시낭송 및 담론 중이신 이생진 시인(all photo by 섬여행가 이승희)  

                                                              

                                      

111 + 54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11월 28(매달 마지막 금요일)

 

7시 인사동 작은 사거리 50m 안국동 방향 전북지업사 골목

 

순풍에 돛을 달고(733-7377)

 

 

* 인사동 지나가다

 

  시 읽는 소리 들려 

 

  귀 쫑긋 들여다보니

 

  아! 여기가 바로 인사동 순풍!

 

  어! 저기,,,

 

  진짜 이생진 시인이 계시네

 

  그냥 들어오셔서 가만히 들으시면 됩니다

 

  시인들 별로 없습니다

 

  다 나 같은 독자들입니다

 

 

 

1. 나뭇잎 : 양숙

 

 

2. 하늘나라 : 김효수

 

 

3.우화의 강 : 낭송 고현심/시 마종기

 

 

4.황혼(黃昏)senior의 계절 : 허진

 

 

5.바지랑대 : 김도웅

 

 

6.명태의  절규 : 김문수

 

 

7.마라도야 마라도야 : 낭송 유재호/시 이생진

 

 

8.단풍 素描 : 윤준경

 

 

9.낙엽의 꿈 : 낭송 김경영/ 시 김소엽

 

 

10.부다페스트에서 영화를 찍다 : 박산

 

 

11. 낙엽 : 이생진 with 담론

                                    

 

 

 

 

 

                           여수 앞바다 금오도에서 이생진 시인을 찾아 오신 박숙희님 '그리운 바다 성산포' 낭송 중

 

  

111 + 53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스케치(진흠모)

 

2014 년 10월 31일 매달 금요일  

 

 

1. 꽃무릇 3 : 양숙

 

 

불갑사 호숫가에서

나를 바로보기 두려워

지나는 바람이라도 불러

마냥 흔들리고 싶었다

대면하지 않으려

무척 애를 썼다

어딘가라도 숨고 싶어

하다 하다 못해

참나무 구멍에 수술 힘껏 디밀었다

까치발 애원도 거부하는 나무가 야속해

쥐구멍이라도 찾아보았지만

 

그냥 흔들려 버리자

마냥 비틀거려 버리자

맘껏 내저으라지

이러다보면 응어리진 것들 빠져 나와

매년 겪는 레드컴플렉스를 지워주겠지

 

어김없이 신기루로 떠도는 빨갱이들

더욱더 강열해지는 붉은 무리

밤 내내 선홍 꽃무릇과 노닐다

충혈 된 눈으로 아침을 연다

 

 

* 레드컴플렉스-공산주의에 대한 과민반응을 일컫는 말.

 

* 진흠모/ 교사 시인/ 진흠모 편집인

 

* email :yasoo5721@sen.go.kr

 

 

 

2. 가을에 : 김효수

 

 

산은 가을에 아주 높은 곳까지 붉다

나는 가을에 얼마나 고운 빛깔 낼까

많은 사람 산처럼 즐겁게 찾아 줄까

보는 사람들 가슴에 물 들이고 갈까

세월 보내다 늦여름에 있는 내 인생

아름다운 빛깔로 물이 들 수 있을까

 

 

그 시절 : 김효수

 

 

날갯짓 허공 가를 때마다 멀어지는 새 한 마리

바라보니 매달려도 냉정히 떠나간 임 생각난다

그땐 하늘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무척 슬펐다

뒷모습에 멍해진 가슴 한없이 아리다 찢어졌다

남몰래 울음 삼키며 견디느라 웃음마저 잃었다

세월은 가는 줄 몰랐는데 흘러 흘러 갔나 보다

시커멓던 머리카락 흰머리로 변해가는 걸 보니

이제 지나간 옛일 되어 한 장 추억으로 있지만

지금도 홀로 앉아 있을 때면 그 시절이 떠올라

붉어진 눈에 흘러내리는 눈물은 가슴을 적신다

 

 

* 진흠모

 

 

3. ,   그리고 시름 : 김문수 


시 한    쓰려고  
술을 들이켰더니

어느 샌가 술이 
시를 써 버렸네
시름 잊으려고
술 한 잔 불렀더니

슬그머니 술이 
시름을 삼켜버렸네
술은 시와 가까이  놀고
시름은 술 속에 녹아 있네
시와 시름은
술과 더불어 어울리는데

나는 저만치서
구경꾼이 되었네

 

 

* 진흠모

 

 

 

 

 

 

4. 됐어 : 김도웅 

 

 

밤바다가 쏟아낸 어둠의 파편에

눈두덩을 얻어맞았다

놀라면서 실망을 버렸다

 

허공의 문턱에 돌아 앉아

반 쯤 희미하게  살갗 드러낸 섬

 

깎였다가 부풀어 오르는

불확실한 앞날이 출렁 거릴 때

세상일을 살피다가 실어증에 걸린 초승달이

달구어 지려는 바닷새의 지저귐에 귀를 닫는다

 

정전기 들끓는 시퍼런 구름이 엎질러지고

미완성의 회한이 유성처럼 제 몸 태우는 파도 위

섬이 슬쩍  건네 준 몇 소절 문장도

행간에 비집고 들어온 조류에 밀려

의식을 잃어간다

 

여기,

의 하얀 손가락이

해풍의 뿌연 안광을 토닥거리는 순간

언제나 보고 싶었던 지난 기억들이

가물거리던 섬의 날숨을 틔워준다

 

번쩍 섬이 눈을 뜬다

 

그러면

 

 

* 아공(我空)-불교 용어. 자아의 실체를 못 느끼고 인식이 단절된 경지

 

* 진흠모

 

 

 

5. 무덤 가까이 : 낭송 유재호 / 시 이생진

 

왜 자꾸 무덤인가

낭만이 되어가는 나의 여행지

6.25 때에 비하면

청량리역 화장실도 호텔급이다

경춘선을 타고 대성리 강변을 지나

일본 관광객 틈에 끼어 가평역에서 내리면

곧바로 어머니 무덤

"어머니 저 왔어요"

", 너냐 올 줄 알았다"

10여 년을 혼자 사시는 산언덕

어머니

얼마나 편안한 음성인가

"어머니 저도 올래요"

"서둘 건 없다만 이곳도 살 만하다

얼마나 조용하냐

여기도 시가 있다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마라

여기는 가진 것이 죄가 되니

맨손으로 오너라"

왜 이렇게 구체적이신가

죽음을 살아본 경험이겠지

그래

사람들은 얼마나 죽으려고 애쓰며 살았나

나도 서서히 이곳으로 옮겨야겠다

-시집 <인사동>에서

 

 

* 진흠모/ 낭송가/ 진흠모 가수

 

 

 

6. 단풍과 낙엽 : 허진

 

 

이토록 화려하게 단풍이 되어

()을 마감하려 하는가 ?

해맑은 연두 빛으로 봄의 여신 되어

 

세찬 비, 바람, 견디고

짙은 녹색으로

꽃과 열매를 키워 내어

조건 없이 내어주고

 

낙엽이란 이름으로 떠나려 하네

인간(人間)들은 세상(世上)과 이별 앞에

외롭고 초라한데

 

심술궂은 북풍 앞에 우수수 떨쳐버릴

시간(時間) 까지

곱게 채워진 단풍으로 버티다가

흩어지는 낙엽으로 안녕히 잘 가시게

 

 

* 진흠모/ 시가 흐르는 서울 -진행자/ 낭송가

 

 

처음 오신 분들.jpg

 

 

 

7. 인사순풍: 낭송 김경영/시 박산

 

 

끄트머리 금요일

인사순풍에서는

이생진 시인이 로 노를 젓는데

양숙 시인의 첫 장단이 은은하고

김경영 낭송이 달콤하다

유재호 목청이 파도를 삼키고

현승엽의 뱃노래가 별을 뿌린다

 

시인의 활기찬 노 젓기 앞 소리에           

박자 맞춰 어기여차우렁찬 뒷소리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얄리 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

 

첨버덩첨벙 밤배 인사순풍나가

셔블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닐다가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얄리 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김경영이 춤을 추고

김윤희 술 나르기 바빠지니

조철암 얼굴 붉어지고

김문수 목청이 높아지자

장상희는 술심이 질겨지고 

김민열은 경상도 사투리로 시를 논하는데

이윤철 헛소리에 웃음소리 높다

 

김기진 김명옥 김효수 허진 김도웅 이승희 임윤식까지

 

됐어! 됐어!

바다가 보이면 됐어!

모두가 술잔 높이 들어 됐어! 됐어

현승엽 기타가 부서지듯 튕겨질 때

시인께서 빈센트 반 고흐를 모셔온다

 

난 고흐를 할래요

 고흐는 순간순간 하고 싶은 것이 많았어요

 사이프러스를 보면 사이프러스를 그리고 싶고

 술을 보면 술을 마시고 싶고

 여자를 보면 여자를 안고 싶고

 순간순간 하고 싶은 것이 많았어요

  

 별이 빛나는 밤

 돈 매클린의 빈센트를 들으며

 고흐를 하고 있어요"

 

starry starry night!

 

어둔 밤 시간이 제멋에 겨울 즈음

할아버지 이제 그만 배에서 내려오세요!”

김정욱이 소릴 지른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 여기서 왜 정읍사가 나오고 청산별곡이 나오고

어부사시사만 어울린다거나 이런 논리적 전개는 하지말자

란 어차피 예부터 지금까지 기쁘거나 슬프거나 ?적인

순수의 근본 아니던가?

그냥 즐거우면 조수미 노래도 나오고 때론 나훈아도

이미자도 나오는 거 아닌지

우리 진흠모’, 이생진 시인 시 가지고 노시는 품새에

얼씨구절씨구 어깨춤 들썩이며 추임새 한바탕!

이게 인사도 순풍항!

 

 

* 진흠모/ 낭송가/ 라인댄스 강사

 

 

 

8. 시월 : 박산

 

가을이 걸어 가고 있다

모범생 교복을 입고

앞만 똑바로 보면서

푸르고 높은 하늘이

흰 구름 불러내 아는 척

그래도 소용없다

곧장 간다

개울이 차게 발목을 감는다

까치와 싸우던 까마귀도

물끄러미 쳐다본다

잎새 붉어진 단풍나무들이

바르르 떨며 부른다

옆도 안 보고 뒤도 안 돌아보고

모범생 가을이 걸어 가고 있다

 

 

* 진흠모

 

 

김민열 53.jpg

 

 

 

9. 시를 훔쳐가는 사람/이생진

 

 

’00시인님

시 한편 훔쳐갑니다

어디다 쓰냐구요?

제 집에 걸어두려고요

 

얼마나 귀여운 말인가

시 쓰는 사람도

시 읽는 사람도

원래는 도둑놈이었다

세상에 이런 도둑놈들만 들끓어도

걱정을 않겠는데

시를 훔치는 도둑놈은 없고

엉뚱한 도둑놈들이 들끓어 탈이다

 

내 시도 많이 훔쳐가라

하지만 돈 받고 팔지는 마라

세상은 돈 때문에 망했지

시 때문에 망하지는 않았다

 

 

* (1929- )  떠돌이 방랑 시인

 

이생진 담론:

 

신문에 보도 된 나하고 동갑인 86세에 소매치기를 하다가 붙잡힌 사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전과 15범이라는 그는, 아마도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평생 살았고

나는 평생 시를 쓰고 살아왔습니다.

내 시를 훔쳐갔으면 잡혀가지 않았을 터인데...

이런 시를 지어 봤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시 쓰기와 소매치기




동정이 간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젠 동정도 늦었고 원인치료도 늦었다
그래서 더욱 동정이 간다

나는 이 시를 쓰지 않아야 할 것을 쓰고 말았다
이것은 내 손버릇이다 내가 경솔하다
그런 반성은 나 혼자도 되지만
그는 겨울 감방에서 반성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경솔하다
내가 나의 시 시를 훔쳐가는 사람을 읽다가
이런 우()를 범한다
나이 여든여섯
동갑이라는 인연 때문에 이런 우를 범한다
이건 나를 통한 추측이지만
그의 군번도 06으로 시작할 거다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던 해 그도 나도 16
그리고 곧바로 6.25 전쟁이 터졌지
이때 죽은 줄 알았는데 죽지 않고
병장으로 제대 했을 거다
그리고 올해에는 6.25 전쟁 정전60주년 기념 호국영웅기장까지 받았으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호국영웅이라니 어마어마한 예우다
그 아픈 시대를 살아남은 것만도 고마운데
호국 영웅이라니
그런 명예를 걸고
60년 동안 소매치기를 하다니
이건 별난 이력이다
나는 시만 쓰기도 60년이 모자랐는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아마 군에서도 그 버릇 버리지 못했을 거다
내무반에서 화랑담배
혹은 불침번 때 남의 사물함 열고 용돈 꺼내기
그의 버릇은
23살에 갑자기 시작한 버릇은 아닐 거다

어느 전통시장에서
주부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고 하는데
나이 86세 내 동갑
그는 한국전쟁 중인 195123살 나이에
처음 소매치기를 하다 적발돼
교도소를 드나들었다 한다
그의 버릇은 휴전이 없다
그런 전과로 교도소를 15번이나 드나들었다 하니
교도소에서는 별일 없었고?
그에겐 어디든 소매치기 시장이다
지금 여든여섯
그는 그 버릇으로 평생을 가는구나
나는 시를 훔치고
그는 돈을 훔치고
훔치는 버릇은 같은데  
나의 버릇과 그의 버릇은 어떤 차이인가
그의 버릇은 보이고 나의 버릇은 보이지 않는 차이
그는 시장바닥에서만 60년을 그 짓 하다 감옥으로 끌려갔고
나는 섬으로 떠돌며 훔치기 60
나는 그이보다 훔친 것이 많은데
아직 감옥에 들어간 적이 없다
나는 내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그는 그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보훈처에서 매달 17만원이 나오는데
그게 적다는 것이지
시장에 나가면 하루에도 그만큼 생긴다는 것이지
노인연금도 돈으로 보이지 않아 신청을 유보하고
꼭 남의 호주머니에서 꺼내야 돈 맛이 나는 손버릇
왜 나는 그 버릇에 물들지 않을까
시가 좋긴 좋은 것인가
돈보다 정말 좋은 것인가
나도 늘 훔치고 살았는데
왜 나는 감방에 있지 않고 따뜻한 이불 속에 있는가
내가 부끄럽다


(2014.10.30)

 

 

 

53 합동.jpg

 

 

@ 자주 참석하시는 국민일보 손수호 논설위원께서 시월 우리 모꼬지 소회 중에

十月詩月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적 제의에 적극 공감하여 만약 요즘 젊은 사람들이

예전 그 어려웠던 시절에도 구겨진 책가방에 시집 한권 넣고 다니는 그 순수의 감성을

따라 시월 한 달 만이라도 시 읽는 詩月이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여수 앞 바다 금오도에서 박숙희 박순희 자매 분들이 물어물어 인사동에

이생진 시인을 찾아오셨습니다. 특히 박숙희님은 애송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인 앞에서 낭송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낭송가의 음성을 타고 나신 음성이었습니다.

 

 

@ 시월의 마지막 밤을 싱어송라이터이며 모꼬지 전속가수 현승엽의 주옥같은 노래와

이생진 시를 버무린 자작곡 노래와 70 80 노래 재청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청사초롱-손수호 시월, 詩月 2014/11/05 국민일보

 

 

금요일의 인사동은 소란 속에 정겹다. 곳곳에서 이국 청년들의 버스킹이 열리고, 물방울 마술이 펼쳐지는 동안, 사람들은 느릿한 걸음걸이로 전통의 냄새를 즐긴다. 상업화의 물결 속에 굳건히 살아남은 키 낮은 집들, 화랑과 필방, 좁게 굽어지는 골목길에 우리 맛을 지키려는 음식점이 있어 고맙다.

이생진 시인도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는 어김없이 인사동으로 향한다. 도봉구 방학동 집에서 마을버스로 나와 4호선 쌍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는 충무로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해 안국역에 내리는 코스. 86세 노인이 1시간 걸려 닿는 곳은 순풍에 돛을 달고라는 이름의 갤러리 카페다.

지난 31, ‘잊혀진 계절이 국민가요처럼 울려 퍼진 그날, 순풍카페에선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이생진을 흠모하는 모임)의 월례 시회(詩會)가 열렸다. 6시 반인데도 좌석은 꽉 찼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환영이다. 잔치 참가비 2만원을 내면 삶은 돼지고기와 묵과 나물과 찌개와 밥에 막걸리가 자꾸 나온다.

순수를 노래하는 인사동의 시낭송 모꼬지

이날 테이블에 놓인 팸플릿에는 ‘111+53’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111’은 인사동 보리수 카페에서 이뤄진 모꼬지가 111개월 동안 이어왔다는 뜻으로, 이 모임을 주도한 이가 이생진 박희진 시인이었다. 그러다 보리수에 사정이 생겨 이 시인 혼자 순풍으로 이사한 게 53회째라는 이야기다. 지난 8월의 순풍 4주년 기념식에는 84세의 동료 박희진 시인과 97세의 황금찬 시인이 참석해 생일을 축하했다.

‘111+53’ 모꼬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동인들의 발표와 낭송으로 꾸며졌다. 어떤 이는 자작시를 읽고, 또 어떤 이는 남의 시를 읽는다. 이생진 시인은 제발 나의 시를 읽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제자들의 배반은 어쩔 수 없다. 이날도 그랬다. 여수 앞바다 금어도에서 올라온 박숙희 회원이 기어이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암송했다. 촉촉한 입술과 젖은 눈으로 긴 시를 외는 동안 시인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낭송가 김경영은 박산 시인의 인사순풍을 읽었다. “달 끄트머리 금요일/ 인사도 순풍항에서는/ 이생진 시인이 시로 노를 젓는데/노 젓기 앞소리에/ 박자 맞춰 어기여차 우렁찬 뒷소리/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시인께서 반 고흐를 모셔온다/ 사이프러스를 보면 사이프러스를 그리고 싶고/ 술을 보면 술을 마시고 싶고/ 여자를 보면 여자를 안고 싶고.” 자신들의 모꼬지 풍경을 시로 노래한 것이었다.

바다가 보이면, 됐어!” 시 읽는 세상 꿈 꿔

마지막으로 이생진 시인이 일어선다. 팔순 나이에 갤럭시 노트4를 쓰고 있었다. 허리 꼿꼿하고 목소리 쩌렁쩌렁. 우리나라 섬 구석구석을 밟아 서정시로 빚어낸 시인이지만 이날은 돈 매클라인의 아메리칸 파이와 빈센트를 연결한 래퍼로 변신했다. 그 열정과 기억력에 박수 작열! 그러고는 신작 시를 훔쳐가는 사람을 발표했다. “시 쓰는 사람도/ 시 읽는 사람도/ 원래는 도둑놈이었다/내 시도 많이 훔쳐가라/ 하지만 돈 받고 팔지는 마라/ 세상은 돈 때문에 망했지, 시 때문에 망하지는 않았다.”

이날 모인 멤버는 화랑 대표, 라인댄스 강사, 교수, 교사, 디자이너, 예비역 장성, 변호사, 주부, 상인 등 다채로웠다. 전주에서 왔다가 막차 타고 내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시가 있는 아름다운 사회를 꿈꾼다. 시를 읽으면 마음이 착해지고, 눈이 아닌 소리로 읽는 시가 삶에 활력과 영감을 준다고 했다.

뒤풀이 시간에 이 시인이 이곳에만 통용되는 건배사를 외친다. 떨리는 손으로 잔을 들고 됐어!”라고 선창하니 됐어!”라는 호응이 따른다. 다시 바다가 보이면이라고 외치자 됐어!”라고 화답이 이어졌다. “됐어! 됐어! 됐어!” 가수 현승엽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가 곁들여지는 동안 막걸리잔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인사동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달빛이 사위어가는 동안 시는 뜨겁게 살아나고 있었다. 시월(十月)은 시월(詩月)로 충분했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