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중(황금알) 2015》
무위無爲 Ⅰ
상자 안 등불 하나 켜 놓고
하나둘 셋 주어진 숫자로
하루 세 번 저린 발을 뻗고
딱 세 끼를 챙겨 먹으며
누군가의 이론을
신앙으로 품고 살다
갑자기 찾아온 태풍 같은
무지막지한 그런 것들에
부서진 상자 밖으로 튕겨 나왔다
어둠에 물체들이 손에 잡혔지만
처음엔 온통 두려움뿐이었고
빛을 찾는 이유가 막연했다
굳이 말하자면
무엇엔가의 의존이었다
시간이 물어다 준 여유가
무력한 한숨을 꾸짖기 시작했다
손과 발을 자꾸 움직였고
배가 고플 때마다 먹었다
이전에 경험 못 했던
이를테면 원초적 생명 같은 것들이
심장을 평안케 움직였고
독립된 사고가 상상력을 확대하니
창조 의지가 몰려 왔고
자유와 자율의
사전적 의미의 경계 따위는 무너졌다
이론이다 이념이다 신념이다
다 깨지고 사라졌다
내 편한 내 세상
희고 검은 수염이 이만큼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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