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패

박산 2021. 9. 9. 07:45

「The Old」 게리 번트(Gary Bunt, 1957~) 영국 켄트주 출신 화가, 시인. 음악 밴드 기타리스트, 건설현장 노동자 등 다양한 직업 전전. 마약과 알코올 중독 등을 겪었다. 

 

 

문패-

1964년 노량진역 앞

야트막한 산등성이 우리 동네

열심히 미장일 다니시던 경배 아버지가

고만고만한 집들이 올망졸망 붙어 있는 골목 어귀에

코딱지만 한 방 두 칸에 쪽마루 겸 부엌 있는

무허가 집 한 채를 사서

한문으로 쓰인 나무 문패를

녹슨 철대문에 걸고는

고사떡에 돼지머리 삶아

아랫집 윗집 옆집 다 불러

"진천 촌놈이 서울 하늘 아래

내 이름 석 자 문패 걸었으니 이제 부러울 게 없씨유!"

세상 다 얻은 표정으로 기뻐하였다

강산이 여섯 번 바뀐21세기

일흔 코앞 변두리 후진 아파트 사는 나는

이름 석 자 문패도 못 걸고 사는 신세다

말 잘 섞고 인사 잘해 알고 지내는

한 쉰 먹었을 우리 동 남성 청소원은

아침이면 환하게 웃음으로 말을 건네는데

볼 때마다사장님!”이라고불러

큰맘 먹고나 사장 아닌데요했더니

"2403호 어르신!"

꼰대 냄새 나는 어르신은 더 싫은데....

囚刑번호 부르듯2403호에 선생은 무신?

문패 달고 살 팔자도 아니니

가슴에박산이름표라도 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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