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

박산 2021. 1. 21. 10:56


「맹종죽림」고창, 윤정숙 찍음

「겨울 숲」

바람은 어둠 따윈 개의치 않는다
볼때기 시리게 쌩쌩 때리는데
숲이 “잘 있었냐?” 묻는다
그 길고 추운 고독 알 것도 같고
그냥 휙 지나치기 미안해
그래 너는 어때 하고는
이 얘기 저 얘기 주고받는데
황색 점퍼 입은 노인이
지팡이 짚고 낙엽 부스러기를
발끝에 질질 끌고 지나간다
햇빛은 어두운 숲을 포기하지 않고
하늘 향해 벌거벗은 나무 꼭대기에서
소리 없이 웃으며 서성인다
빨간 바지 파란 파커가 어울리는 여인이 
검은 선글라스로 어둠을 더하면서
내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스쳐 지나간다
숲은 저 여인하고도 말하고 싶어
나무 몇 그루를 흔든다
숲을 빠져나왔지만
노인은 아직 멀리 가지 못했다
돌아본 숲이 표정 없이 잘 가라 손짓이다
바람은 여전히 차다

시집『인공지능이 지은 시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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