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전화 했다

박산 2021. 1. 25. 12:31

◁대관령▷ 김석순 찍음

◀무야의 푸른 샛별, 60쪽 ▶

 

 

「그가 전화 했다」

 

 

함박눈 내리는 날

그가 전화 했다

약간은 탁하지만 익숙한 음성으로

여기 오대산이야

 

쪽 뻗은 느릅나무 숲

툭툭 몇 뭉치 눈이 떨어졌다

작은 움직거림 새들

은은한 동종 소리

시린 귀를 덮는 순간

그의 말이 다시 들렸다

 

온 지 좀 됐는데

종로 뒷골목 술집이 그립다

여기서 살까 왔는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그리고 말이야

저번에 갔던 그 집 매운탕

 

눈보라가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바지춤 내려 흔들어 포물선 그어

시원하게 오줌 줄기 뿌리고는

통쾌한 기분으로 풀썩 큰 대자로 누웠다

쉼 없이 쏟아 뿌려대는 하늘이 위대했다

 

흰 숲에서 들리는 꼼지락거리는 소리

눈동자 맑고 검은 고라니 한 마리

뒤뚱거리며 지나갔다

 

그의 말이 다시 들렸다

 

밤이 무서워 아니 싫어

겨울바람이 짜증 나

 

그는 외로움을 하소연하는데

들은 척 만 척

난 이미 RF를 타고 거기 가 있다

점으로 다가온 황조롱이 한 마리가

무언가 입에 물고 숲으로 사라졌다

 

이후 그가 뭐라 했는지는

쌓인 눈에 덮여 안중에도 없었다

 

 

*RF : radio frequency 무선주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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