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야의 푸른 샛별, 60쪽 ▶
「그가 전화 했다」
함박눈 내리는 날
그가 전화 했다
약간은 탁하지만 익숙한 음성으로
여기 오대산이야
쪽 뻗은 느릅나무 숲
툭툭 몇 뭉치 눈이 떨어졌다
작은 움직거림 새들
은은한 동종 소리
시린 귀를 덮는 순간
그의 말이 다시 들렸다
온 지 좀 됐는데
종로 뒷골목 술집이 그립다
여기서 살까 왔는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그리고 말이야
저번에 갔던 그 집 매운탕…
눈보라가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바지춤 내려 흔들어 포물선 그어
시원하게 오줌 줄기 뿌리고는
통쾌한 기분으로 풀썩 큰 대자로 누웠다
쉼 없이 쏟아 뿌려대는 하늘이 위대했다
흰 숲에서 들리는 꼼지락거리는 소리
눈동자 맑고 검은 고라니 한 마리
뒤뚱거리며 지나갔다
그의 말이 다시 들렸다
밤이 무서워 아니 싫어
겨울바람이 짜증 나
그는 외로움을 하소연하는데
들은 척 만 척
난 이미 RF를 타고 거기 가 있다
점으로 다가온 황조롱이 한 마리가
무언가 입에 물고 숲으로 사라졌다
이후 그가 뭐라 했는지는
쌓인 눈에 덮여 안중에도 없었다
*RF : radio frequency 무선주파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