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봄, 다랑쉬굴에서

박산 2018. 4. 30. 15:22



다랑쉬굴에서 ㅡ 


 제주 구좌읍에는 
 아름다운 분화구 다랑쉬 오름이 있습니다. 

 휘파람새 소리가 아름다워 
 오름의 미학이 느껴지고 
 고사리가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고 
 노루가 껑충거리며 뛰어 다닙니다.  

 
이념이란 무엇인가? 

 이 의문을 초월한, 
 작고 소리 없는 제사가 
 매년 이맘 때 꽃피는 봄날 
 하늘을 향한 시인의 몸짓으로 
 실현하고 있습니다. 

 시는 진혼곡으로 피어나는 봄꽃이 됩니다. 

 어린이를 포함해 
 두려움을 피해 피신했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유해가 발견된 다랑쉬굴 에서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향을 사르고 막걸리를 붓고 
 시를 낭송합니다. 

 시인 혼자 시작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몇 분의 참여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올해 아흔 잡수신 이생진 시인께서는 
 이들을 불러내 시로 대화를 하십니다. 

 左는 뭐고 
 右는 뭡니까? 

 에이! 그런 거 따지기 전에 
 '인간의 순수한 영혼을 사랑하는 방법부터 생각하라'는 
 시인의 몸짓을 배웁니다. 

 2018년 하늘 높고 푸른 4월 
 시인께서 새벽에 둘러 논 노란 천으로 
 구천의 혼을 부르는 시를 읊습니다. 

 아홉 살에 죽은 이재수 외 열 분 모두 열한 분을 부르십니다. 

 
열한 분의 접시에 
 각각의 떡과 과일과 국화 한 송이에 막걸리를 따르면서. 
 무용가 박연술님의 슬픈 춤사위가 황천의 노란 천을 휘돌더니 
 불러 낸 혼들과 부둥켜안고 울다 통곡을 넘어 진정의 단계에 들어 
 바위를 감 싼 하얀 천으로 둘러진 진혼의 쉼터에서 
 손을 들어 하늘을 감쌉니다. 

 용서와 평화를 갈구합니다. 
 영혼들이여 이제는 어두운 굴을 나와 자유롭기를! 
 비옵니다! 
 비옵니다! 

 이 땅의 원망을 내려놓으시고 
 훨훨 이 오름을 나르소서! 
 진혼의 이 굿을 받아주시고 
 시 한 줄에 이제는 사랑이 스며들길 비옵니다. 

 
진행자의 고백 ㅡ 

어린 생명 포함 
 11구의 4.3 유해가 발견된 구좌의 다랑쉬굴 4월 
'이생진 시혼제'에서 굴건제복하신 시인께서
 
 "자네가 진행을 하지" 

 첫해는 멋모르고 
 휘바람새와 double 진행을 했었고 
그 다음 해부터는 
 화산암 숭숭 뚫린 구멍 사이를 떠돌며 
 떡 한점 과일 한쪽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영혼들이 
 이리 말 하시오! 저리 말 하시오! 
그냥 시키는 대로 진행을 했었지요

하늘 고운 2018년 봄 
 
군데군데 찔레꽃 날카로운 가시들조차도 
 시인이 새벽부터 두르신 노란 천으로 
각각의 혼을 고이 감싸 안아 주는 날입니다 


 

조촐한 제사상 
11개의 플라스틱 접시에는 
떡 한라봉 한과 국화에 
시인께서 막걸리로 상향 
 절을 올리시고는 

 "자네가 진행을 하지" 

뭐라 하면서 진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목울대를 치받는 뭔가 꽉 막고 있어서 
괜스레 하늘만 멍하니 올려 보다가 
울컥울컥 가슴에 박히는 
 뭔지도 모르는 설움으로 
 흐르는 눈물을 애써 숨기려니 
선글래스가 얼마나 고마웠었는지 



 열한 분의 유해 한 분 한 분을 
 시로 불러내시는 떨리는 목소리도 슬펐지만 
아흔 잡순 시인의 
 그 지고지순이 
 왠지 나는 더 슬펐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이유 없이 더 슬퍼질 때처럼 

 아무튼 여기 다랑쉬굴에서는 
뚝뚝 흐르는 눈물로 
 진행이 어려웠음을 고백합니다








값비싼 술과 고귀한 제주 토속음식으로 
황공한 대접을 해 주신 
구좌문학 홍기표 회장님과 동인 여러분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봉 아래 오정개 해안 
이생진 시비 거리에서 함께하신 성산포문학회 동인들
박인화 고현심 김순란 님 
진흠모 대표로 백록담에 올라 
이생진의 다랑쉬굴 진혼을 뿌리고 오신 김정욱 '인사島' 디자이너님
이생진 시인의 인기 낭송시 '내가 백석이 되어'를 낭송해
일약 스타가 되신 조철암 낭송가님   
서귀포 문화충전밧데리 여러분들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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