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사진가 3

은밀

시집 《'노량진 극장' 중, 2008 우리글》 「은밀」 밖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아파트먼트에서 거울 속의 마네킹처럼 보이며 살고 싶지는 않다 정직하지 않은 삶이라고 욕해도 좋다 나는 수족관 어류가 아니다 간혹은 갈색 커튼이 드리워진 침침한 스탠드 불빛 아래 올 사람 막아 문 걸어 잠그고 침묵을 가장한 채로 찌그러진 치즈 한 무더기에 제멋대로 굽은 윙글스 몇 조각과 버번위스키 한 병만으로 한 며칠 그냥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게으르고 싶다. 지나친 고요가 싫증이 날라치면 발가락으로 누르면 켜지는 그런 낡은 전축을 가까이에 두고 아무도 들여다 볼 수없는 은밀한 나만이 소유 할 수 있는 그 나태를 위하여 세상에다가는 “나 그냥 며칠 죽었다" 통보하고 그러다 원하여 꿈꾸길 세상살이 한 몇 번은 죽었다 ..

2021.08.26

옛날 옛적 여의도에서 엎드려뻗쳐!

「옛날 옛적 여의도에서 엎드려뻗쳐!」 때는 수양버들이 강가에 늘어졌던 1960대 초 지금의 노량진 수산시장 자리 장택상 별장과 여의도 비행장 사이에는 샛강이 흘렀지 그 샛강에 땡볕 내리쬐는 날에는 어린 초등학생들도 군데군데 마른 땅 찾아 요리조리 발목이 물에 살짝 빠지면서 건너 다닐 정도였지 국영이 유신이하고 또 누구였던가 이름이 가물가물한 애들 너댓이 지금의 63빌딩 근처 땅콩 서리를 위해 샛강을 건넜지 근데 말이야...땅콩밭에 가기도 전에 경비 서던 공군 헌병에게 발각됐어, 지루하던 차에 장난감들이 스스로 찾아왔으니 얼마나 즐거웠겠어 일단 우리는 그의 명령에 따라 엎드려뻗쳤지 그리고는 주소와 부모님 뭐 하시나로 호구 조사를 당했지만 실제 핵심은 어느 녀석이 예쁜 누나가 있느냐였어 순진한 국영이와 유신..

2021.07.07

대접

「대접」 실제로 평생 살아오길 세일즈맨 을(乙)의 인생이라 대접받는 일보다는 대접하는 일에 훨씬 익숙합니다 치열한 밥벌이 일손에서 저만치 한편으로 떨어져 잡문이나 긁적이며 굳이 詩라 우기는 지금의 삶일지라도 어디 가면 해 오던 그대로 대접을 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두 해째 접어든 갑갑한 코로나로 인한 부재의 그리움 때문인지 3류 시인에게도 '보고 싶다' 문자로 다가오는 샤이 독자들이 있습니다 얼떨결에 밥 한 끼 대접받고 소문난 막걸리꾼이니 종3 골목에서 매운 주꾸미볶음을 안주로 마셨고 빵 커피 쿠폰을 톡으로 받았습니다 내 나이가 몇인데.... 이건 아니다 싶어 어디서건 내가 먼저 계산해야지 하는 생각이 앞서 목동 한정식집 넷이 모인 자리 슬며시 일어나 카운터로 가는데 쉰다섯 먹은 A 여인이 눈을 흘기며 다..

2021.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