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사진 작가 2

11월은 겸손할 때다

11월은 겸손할 때다 ㅡ 계절을 달리하며 묻힌 때를 11월에는 닦아내야한다 봄 내음에 취한 척 꽃을 핑계로 저 여인에 품었던 불손의 찌꺼기를 걷어내고 신사동 빌딩을 간절히 한 채 사고 싶어 가당찮게 은행을 털 모사로 신사임당을 무작정 흠모했던 머저리의 무모함도 퍼내야한다 어디 그것뿐이랴 저눔들은 億億 하다 千자를 붙여도 모자라 兆兆하는데 정작 이눔은 百百 十十에도 움츠려드는 새가슴으로 괜스레 조상 탓이나 하고 있는 못난 타성도 버려야한다 낙엽을 낭만으로 감성하기 전에 가슴속 삭은 낙엽 쓸어내 겸손을 담을 때다 11월은 그래야한다

2022.11.01

도시의 강

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중, 황금알 2015》 도시의 강 - 어둠이 찾아와 불빛이 잉잉거렸다 다리 위 술 취한 자동차들이 별 몇 개씩 따고 지났다 물고기 두 마리가 펄떡 둔치로 뛰어올라 입술 붙은 연인의 가슴에 각각 붙어 비늘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할딱거렸다 누군가 집어 던진 스마트폰 동영상이 제멋대로 누워 켜지더니 사라진 모래톱을 꺼내 찍기 시작했다 저만치서 뿔 달린 검은 소 한 마리가 딸랑딸랑 워낭소리로 다가오다 길이 갑자기 사라지자 하늘로 날았다 어둠 물결 속 한옥 기왓장들이 이끼를 잔뜩 앉힌 채로 둥둥 떠다니다 바람이 몰고 온 나트륨 조명에 각진 콘크리트 덩이로 변했다 아까부터 어정어정 강을 바라보며 검은 옷과 흰옷을 순간으로 갈아입던 수염이 긴 할아버지가 홀연히 사라졌다 하늘 향해 울부짖는 ..

2022.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