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도 그렇긴 하다

박산 2023. 7. 5. 07:56

거문오름에서(2015)

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2015, 황금알) 》 중에서

 

도 그렇긴 하다 -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스무 해도 훨씬 지난 얘기지만

어찌어찌 머리 얹으려 골프장엘 갔다

처음 밟는 잔디에 잘 맞을 리 있나

그래도 칭찬 일색이다

어쩌다 롱 퍼팅이

소 뒷걸음에 똥 밟은 격으로 들어갔다

타고난 골프 천재다 -

나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스윙 폼이 타고났다 -

열심히 치라는 얘기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러면 그렇지 내 뛰어난 운동 신경이 어디 가나

세 살 바보가 되어 우쭐했다

 

내게 시를 보여주는 이 몇 있다

몇 개의 단어 쓰임이 상쾌하고

문장 몇이 조화롭다

아니 어찌 이런 멋진 표현을 -

읽는 맛이 너무 좋다 -

시적 소질이 풍부하다 -

 

시도 그렇긴 하다

공치는 일과 매한가지로

누군가 칭찬해주고 용기를 주어야

쓸 맛이 난다

그러나

시를 쓰며 우쭐했다면

짧은 순간에 자기반성이 따른다

자신이 준 스코어에

자신이 우선 답을 해야 한다

 

세상과 얼마나 진지하게 타협했었는지보다는

순간의 감성이 준 풋내 나는 언어의 나열이

나의 천재성이란 착각으로 시를 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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