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꽃 한 줌

박산 2023. 4. 1. 17:43

 

시집 《'노량진 극장' 중, 2008 우리글》

 

개나리꽃 한 줌 -

 

운동 삼아 걸어 출근하는 날

아파트 뒷길 언덕배기

초등학교는

야트막한 야산 기슭에

봄이 되어 앉아있다

 

봄날 소인국에

봄 같은 아이들이 꿈틀댄다

짧은 다리에

끌고 메는 가방이 앙증맞다

웃고 재잘거리는

하얗고 뽀얀 얼굴이 봄빛이다

교문에 서서 인사 나누는

어린 여선생도 봄꽃이다

학교까지 따라 온

젊은 엄마도 봄나물이다

 

문득 나도 봄풀인가 하다

그 뻔뻔함에 멋쩍어 씩 웃어본다

 

한 꼬마 봄이

병아리 같은 걸음으로

날 앞질러 쫑쫑 간다

가늘고 여린 예쁘고 귀여운 개나리꽃 한 줌 같다

그러다 문득

네가 내 나이면 나는 없겠지하니

봄이 사라졌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마이  (9) 2023.04.19
뭉치자 모이자  (5) 2023.04.11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57  (10) 2023.03.26
시의 능청  (11) 2023.03.22
산아! 모든 사물에 더 겸손하자!  (9) 2023.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