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숲속 온천 이야기 ㅡ
길 양옆 눈이 내 키보다 더 쌓였다
그럼에도 눈을 치워 널찍한 길을 냈다
그런 산속 길을 미니버스로 올라 산장호텔에서 잤다
다시 또 눈 내리는 아침
무릎 장화를 신고 푹푹 빠지는 숲속 눈길을 헤쳐 나가는데
소나무 삼나무 등에 걸쳤던 눈덩이들이 냉랭으로 반기며 퍽퍽 내 머리로 떨어진다
얼마를 내려가니 뿌연 온천 김 서림이 보인다
미끄러질까 발걸음 조심조심 물가로 내려가니
한 서너 평이나 될까
천연 온천이다
손을 살짝 담가보니 제법 뜨겁다
발가벗은 사내 하나가 들어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여긴 '누드'라고 이미 알고 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성이 없다
그래도...하다가
언제 또 이 고립된 산속 눈 숲에서 발가벗겠나 하고는 다 벗었다
하이!
일본 말을 못하는 나는 그냥 짧은 인사만 나누었다
굳이 눈으로 덮인 이 아름다운 숲에서
떠드는 건 자연에 대한 모독이다
지저귀는 새와
바람에 신음하는 나무들의 오르가슴
그리고는 쉴 새 없이 흐르는 온천만이
여기서는 소리 낼 권리가 있다
쉿! 여기서 인간은 침묵이다
한 5분이나 지났을까 너무 뜨겁다
상체를 들어내고 앉으니
팔과 가슴이 벌겋게 익었다
큰 눈덩이 환영식은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다
척척 눈덩이 들러붙는 벌건 얼굴과 등짝이 시원하다
일본도 한국도 유명 드라마를 여기서 찍었다는데
원시의 숲속 하얀 눈에 둘러 쌓인 김 서린 온천에
남녀가 탕에 대사 없이 들어만 있어도 환상적 에로다!
시청율은 당연 오르겠지
돌아가는 길 오르는데
수건을 목에 두른 서양인 남녀 커플이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묻는다
Way to Hot Springs(온천 가는 길)?
에이 짜식들! 조금만 일찍 왔어도 이 할배 느그들 누드 한 번 보는 건데...하긴 그럼 난 누드 못했을 터이지만!
지칠줄 모르는 눈은 계속 내리는 중이다
- 일본 홋카이도 다이세츠 산 「후키아게 노천온천(吹上露天の湯/ふきあげろてんの)」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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