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열전美男列傳

박산 2023. 1. 9. 09:30

 

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중, 2011 우리글》

 

미남열전美男列傳 -

 

어린아이 취미치곤 고상한

극장가는 걸 좋아했던

솜털 보송보송했던 시절

예쁜 여자보다는

잘생긴 남자가 멋졌다

 

대머리 노들이발관 이발사

들창코 만화가게 주인

실눈이 로마양복점 재단사

배불뚝이 역전사진관 사진쟁이

합죽이 솜틀집 아저씨

코흘리개 국영이

얼굴 버짐 하얗게 뜬 재선이

까만 피부라서 별명이 깜상

이름이 생각나지 않은 형 등등

노량진역 앞

노량진극장 끼고 들어와

쭉 가면 만년고개 넘고

오른쪽 틀면 서낭당고개 넘는 우리 동네는

못난이들 집합소였다

근엄한 대통령 얼굴도

솔직히 무 꼭지 같았다

 

그래도 영화 속

총 차고 말 타고

삐딱하게 시가Cigar 씹는 존 웨인이 잘 생겼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그랬지만

뾰족뾰족한 제임스 딘은 별로였다

신성일이 별로이듯이

부리부리한 눈매 각진 턱에 목소리 좋은

윤일봉이 남궁원보다 좋았다

 

잘생긴 게 무슨 대수냐

못생긴 어른들은 씹어뱉듯이 말했다

 

세월이 한참이나 흘렀다

난 장동건이 잘생겼는데

무 꼭지 같은 비가 잘생겼단다

TV에 방영되는 어느 영화제인가

아직도 미남인 윤일봉이

가슴 푹 파인 드레스 젊은 여배우 대동하고

무 꼭지 같이 생긴 배우들에게 상을 주고 있다

 

저것도 얼굴이라고…‥

아직도 내겐 미남열전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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