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중, 2011 우리글》
미남열전美男列傳 -
어린아이 취미치곤 고상한
극장가는 걸 좋아했던
솜털 보송보송했던 시절
예쁜 여자보다는
잘생긴 남자가 멋졌다
대머리 노들이발관 이발사
들창코 만화가게 주인
실눈이 로마양복점 재단사
배불뚝이 역전사진관 사진쟁이
합죽이 솜틀집 아저씨
코흘리개 국영이
얼굴 버짐 하얗게 뜬 재선이
까만 피부라서 별명이 ‘깜상’인
이름이 생각나지 않은 형 등등
노량진역 앞
노량진극장 끼고 들어와
쭉 가면 만년고개 넘고
오른쪽 틀면 서낭당고개 넘는 우리 동네는
못난이들 집합소였다
근엄한 대통령 얼굴도
솔직히 무 꼭지 같았다
그래도 영화 속
총 차고 말 타고
삐딱하게 시가Cigar 씹는 존 웨인이 잘 생겼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그랬지만
뾰족뾰족한 제임스 딘은 별로였다
신성일이 별로이듯이
부리부리한 눈매 각진 턱에 목소리 좋은
윤일봉이 남궁원보다 좋았다
“잘생긴 게 무슨 대수냐” 고
못생긴 어른들은 씹어뱉듯이 말했다
세월이 한참이나 흘렀다
난 장동건이 잘생겼는데
무 꼭지 같은 비가 잘생겼단다
TV에 방영되는 어느 영화제인가
아직도 미남인 윤일봉이
가슴 푹 파인 드레스 젊은 여배우 대동하고
무 꼭지 같이 생긴 배우들에게 상을 주고 있다
“저것도 얼굴이라고…‥”
아직도 내겐 미남열전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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