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 詩의 亞流)

박산 2022. 5. 29. 12:00

 

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 亞流)

 

 

사이가 좋습니까?

 

(묵묵부답)

 

사이가 나쁩니까?

 

(묵묵부답)

 

 

묵묵부답을 깨고,

 

뭐 누구들처럼

 

죽자사자 붙어 꿀 떨어지는 사이는 아닙니다

 

솔직히 이즘은 데면데면할 때가 많습니다

 

마흔두 해 넘어 살고 있습니다

 

간섭이나 참견을 사랑이라 착각할 때는 아니지요

 

아버지 닮아 아사바사 DNA는 애초에 없었습니다

 

나이 듦에 나의 자유가 중요하니 아내의 자유도 중요합니다

 

가장 오래 잠을 같이 자고 가장 오래 밥을 함께 먹은 친구 사이입니다

 

나하고 스타일이 다른 아직도 꿀 떨어지게 금슬 좋은 벗이

 

SNS를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문장을 보내왔습니다

 

ㅡ 배우자의 사소한 실수를 너무 나무라지 맙시다

    아무렴 댁과 결혼한 실수에 비하겠습니까

 

지금 아내와 나 사이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습니다

 

 

 

아내와 나 사이 ㅡ 이생진(1929~ )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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