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시나무

박산 2021. 10. 14. 07:01

'For The Blue' 김명옥 화가

 

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중 2011, 우리글≫

 

은사시나무 -

 

야트막 산길

 

어디 가세요!”

잎새 잃은 은사시나무가 외쳐요

 

쓰윽 쳐다보니

삐쩍 말라 키만 멀거니 큰 벌거벗은 모습

어찌나 추워 보이던지

떼로 모여 사는 녀석이

왜 저리 청승맞게 홀로 떨어져 있는지

 

! 그건 알아 뭐하게!”

생각 없이 뱉어버린

짧고 퉁명스런 짜증에

나무 꼭대기 몇 장 안 남은 잎사귀들

어쩔 줄 몰라 팔랑거려요

 

짠한 마음으로 다가가

어루만져 속삭였지요

사실은…‥ 갈 곳도 없이 그냥 가는 거야

그제야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도 그냥 서 있는 거예요

너무 외로워서…‥

 

등 뒤로 찬바람이 불어왔지만

이미 깊은 사이가 된 듯

서로의 가슴을 비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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