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본 지가 언젠데!

박산 2020. 8. 31. 10:15

'停' (이광무 그림) 

 

「인공지능이 지은 시」 26쪽

 

*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9시 

  평소 십여 명의 승객이 탔었는데 버스에는 덩그러니 나 혼자였습니다.

  이런 날엔 이 작은 섬 동네를 거닐다 아무 얘기나 나눌 어부를 만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 하늘 본 지가 언젠데!  ▷

 

큰 섬에 붙은 작은 섬 뒷동네

다 해 봐야 대여섯 가구 사는 마을

갈대 하늘대는 둑방 아래 논길 걷다가

야트막한 언덕 아래 작은 포구를 만났다

 

파랑에 엎어질 것 같은 배를 부두에 묶어 놓고

그물 손질 중인 예순은 족히 들어 보이는 부부에게

앞 섬 이름 이것저것 묻는 여행자의 말 붙임이 싫지 않았던지

마시던 깡소주 한 잔을 건네며

살아온 이력을 판소리하듯 들려주는 데

재밌다!

 

스무 살 때부터 고깃배를 탔고

스물여덟에 두 살 많은 (지금 옆에 있는) 이 사람 마누라 만나

삼십 년 넘어 같이 배를 타고 있는데

하늘 보고 만든 아들 이름이 식이고

별 보고 만든 딸 이름이 순이란다

 

평생 배를 두 개 타고 사는 인생을 아느냐 묻는다

 

고깃배는 몇 번 바꾸었는데

다른 한 배는 아직 못 버리고 있다고

 

이 너스레를 고스란히 듣고 있던 아내가

무심한 듯 툭툭 뱉어내는 걸진 말들을

! 하고 밀려왔던 파도가 쓸고 갔다

 

하늘 본 지가 언젠데 입만 살아 저리 헛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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