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평지平地에 이르러 -
다시 평지에 이르러
다시 평지에 이르러
다 잊어버렸습니다
기억나는 건
붉은 색 망토 입고 하늘을 날던 기쁨과
그 기쁨 배가하려
청록계곡 어딘가에 머물며
가쁜 숨 몰아쉬었던 어설픈 욕망의 시련 뿐
이제까지 온 감사함에 대한 예의도
날 수 있었던 건강함도
저 만치 보이는
‘조금만 더’의 과욕 만을 따랐을 뿐
계곡 맑은 물 속
양손 집어넣고 느낀 청량함은 그 때뿐이고
구름 속 날개 부딪히는 신선함을 그저 당연시 한
나는 받고 먹을 줄만 아는 에고이스트
그 한계는 그 때 뿐 이어야지요
산맥이 기지개를 켜고
그를 재운 산하는 아직 여전한데
나는 내려앉아 숨을 고르고
자아는 춤을 추며
또 다시 날아오를 생각에
상념의 평화를 채우고 있습니다
가보지 못한 강줄기를 따라 하늘로 오를까
디뎌보지 못한 대지의 흙 한 움큼 집어 하늘로 뿌려볼까
이름 모를 풀 한포기 근처
말도 안 붙여주어 서럽고
발길로 채여 항시 아픈 돌멩이 하나 집어 들어
이만치
‘여기는 내 거다’ 금 한줄 그어놓고
혼자 ‘친 하자’ 해 버리고
돌멩이와 풀 그리고 내가 벌이는 사랑놀이나 만들어 볼까
겨울 동백꽃 숲속 밑동 잔설 파다가
모카 향 그윽한 커피에 용해시켜
동백 그 붉은색 도도함에 겪은 설음 잊게 할까
여름 폭우 속 힘없는 잎사귀만 무성한 노송
구멍 훤히 뚫린 아랫도리에 움츠려 앉아
그의 비 맞은 차가운 살갗 어루만져
그의 허전함 벗하여 줄까
날개는 미명迷明 속의 천사가 가지고 올 것이고
나는 단지 좋아하는 날개의 색깔만 구상할 뿐
동녘의 햇살이 기우뚱거리고 나타난 이즈음
심장은 빛의 포만감에 감사하고
만 가지 꿈은 만개의 긍정란肯定卵에 영글었다
하나 둘 그걸 깨고나와
내게 다가 올
움직이는 사고의 미생물들과
알알이 하나하나 사연 듣고
보고 + 더듬어
앞서 가든 뒤로 가든
나는
강을 끼고
산이 있는
그 대지를 지나고 오를 뿐
운명이 그 맥을 짚어 나를 요동치게 하더라도
만 개의 나의 난卵들과 함께
푸른 천사의 날개를 달고
훠어이
훠어이
날아야지
비록 지금 다시 평지에 서 있지만
(박산 시집 '노량진 극장'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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