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박받는 삼식이

박산 2016. 10. 5. 10:15

 

 

 

                                                                                                                                                                                                      -할슈타트-

 

 

구박받는 삼식이 -


광삼씨는 29년간 꼬박꼬박 출근해

열심히 일했다.

그 덕에 새끼들 공부시키고

알뜰살뜰 마나님 모시고

그냥저냥 남들만큼은 살았다

 

올해로 퇴직 이 년 차

쓰고 남을 정도로 넉넉히 모아 놓은 돈은 없지만

공부 끝낸 아이들 직장 다니니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삼십 년 경력 ‘살림의 제왕’ 마나님께서는

출근 안하고 집에 있는 서방이 측은 했던지

처음 두어 달 정도는 점심밥도 차려 주셨다


퇴직 후, 딱히 정해 놓고 갈 데 없는 광삼씨

아침 운동 뒷산에 올랐다가도

돈도 아낄 겸 꼭 돌아와 집밥을 먹었다

책 보러 도서관에 갔다가도

마나님도 볼 겸

꼭 돌아와 집밥을 먹었다


학교, 동네, 사우나, 다양한 친구 모임

컴퓨터배우기 봉사활동 헬스클럽 등등

잡사雜事에 하루 일정 빡빡한 마나님

일식이도 아닌 이식이도 아닌

하루 꼬박 삼식이 광삼씨에 그새 질렸다


아침이면 밥도 안 먹고 나간다는

영식이 남편을 둔

봉사활동 친구가 생각난다  

 

“그래! 이래서 남자는 집구석에 있으면 안 돼!”


눈치 없는 광삼씨

“평생 벌어 먹여 살려 놓았더니 돈 못 번다고

  벌써부터 날 구박해!  이노무 마누라쟁이 “

눈물나게 서럽다


하루는 시간이라는 순간으로

몇 달은 세월이라는 한숨으로 흘렀다


머리 좋은 삼식이

‘안 먹으면 나만 손해다’ 라는

만고불면의 진리를 깨달았다

 

김치 송송 썰어 넣고

라면 정도는 스스로 끓여 먹었다


저녁 끼니 때 지나

7시 넘어도 오지 않는 마나님

하염없이 기다리다

배고파 지치길 몇 차례

물 조절 못해 개죽 끓인 시행착오를 거쳐

이젠 밥도 제법 잘 짓는다

국도 찌개도 좀 끓인다

 

“내가 요리에 소질이 있나”

최근 이런 생각한 적도 있다


친구 만나 수다 떨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신 마나님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룰룰랄라

내장 빼고 토막 친 생태 한 마리

미나리 파 쓱쓱 어슷썰기로 모양 내 썰고

콩나물 고춧가루 팍팍 넣어

얼큰한 찌개를 끓였다

차려 놓은 식탁

휘휘 수저 저어 맛 본 마나님,

“ 아직도 간을 이렇게 못 맞추나! 쯔! 쯔! ”

한심하다 혀를 찬다

 

삼식이 광삼씨 구박에도 아랑곳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너무 짜 ? ”


( 박산 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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