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슈타트-
구박받는 삼식이 -
광삼씨는 29년간 꼬박꼬박 출근해
열심히 일했다.
그 덕에 새끼들 공부시키고
알뜰살뜰 마나님 모시고
그냥저냥 남들만큼은 살았다
올해로 퇴직 이 년 차
쓰고 남을 정도로 넉넉히 모아 놓은 돈은 없지만
공부 끝낸 아이들 직장 다니니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삼십 년 경력 ‘살림의 제왕’ 마나님께서는
출근 안하고 집에 있는 서방이 측은 했던지
처음 두어 달 정도는 점심밥도 차려 주셨다
퇴직 후, 딱히 정해 놓고 갈 데 없는 광삼씨
아침 운동 뒷산에 올랐다가도
돈도 아낄 겸 꼭 돌아와 집밥을 먹었다
책 보러 도서관에 갔다가도
마나님도 볼 겸
꼭 돌아와 집밥을 먹었다
학교, 동네, 사우나, 다양한 친구 모임
컴퓨터배우기 봉사활동 헬스클럽 등등
잡사雜事에 하루 일정 빡빡한 마나님
일식一食이도 아닌 이식二食이도 아닌
하루 꼬박 삼식三食이 광삼씨에 그새 질렸다
아침이면 밥도 안 먹고 나간다는
영식零食이 남편을 둔
봉사활동 친구가 생각난다
“그래! 이래서 남자는 집구석에 있으면 안 돼!”
눈치 없는 광삼씨
“평생 벌어 먹여 살려 놓았더니 돈 못 번다고
벌써부터 날 구박해! 이노무 마누라쟁이 “
눈물나게 서럽다
하루는 시간이라는 순간으로
몇 달은 세월이라는 한숨으로 흘렀다
머리 좋은 삼식이
‘안 먹으면 나만 손해다’ 라는
만고불면의 진리를 깨달았다
김치 송송 썰어 넣고
라면 정도는 스스로 끓여 먹었다
저녁 끼니 때 지나
7시 넘어도 오지 않는 마나님
하염없이 기다리다
배고파 지치길 몇 차례
물 조절 못해 개죽 끓인 시행착오를 거쳐
이젠 밥도 제법 잘 짓는다
국도 찌개도 좀 끓인다
“내가 요리에 소질이 있나”
최근 이런 생각한 적도 있다
친구 만나 수다 떨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신 마나님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룰룰랄라
내장 빼고 토막 친 생태 한 마리
미나리 파 쓱쓱 어슷썰기로 모양 내 썰고
콩나물 고춧가루 팍팍 넣어
얼큰한 찌개를 끓였다
차려 놓은 식탁
휘휘 수저 저어 맛 본 마나님,
“ 아직도 간을 이렇게 못 맞추나! 쯔! 쯔! ”
한심하다 혀를 찬다
삼식이 광삼씨 구박에도 아랑곳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너무 짜 ? ”
( 박산 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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