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2

遁走·fugue

遁走·fugue ㅡ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 Wanderlust! 아니 그냥 여기만 벗어나면 된다 저 사람 얼굴 보는 게 싫어졌다 말 섞는 것조차 싫다 의무 방어전은 챔피언의 일이다 어디지, 여기가? 권력을 등졌던 광인들의 둔주! 스스로 'Fugue'라는 단어를 썼던 랭보는 경력 10년도 안 된 시 쓰기를 버리고는 잡상인 건달패 날품팔이 선원 등등 안 해본 직업 없이 아프리카를 헤매다가 무릎 종양의 고통으로 37세에 죽었다 죽는 날까지 불쌍했던 불세출 그림 천재 고흐는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 프랑스까지 스무 개 넘는 도시를 떠돌면서도 그토록 동경했던 일본을 푸가하지 못하고 그도 37세에 스스로 생을 끝냈다 자학과 아집에 도취된 둔주의 삶! 스물 몇 살 때 둔주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결국 결혼이란 굴레로 위장되..

2023.08.11

움직이는 그림

시집 《'인공지능이 지은 시' 중, 2020 황금알》 움직이는 그림 ㅡ 가뭇없던 그 그림이 다시 나타난 건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니다 노랑, 파랑, 딱 집어 정확히 말하라고 종주먹을 들이대면 더 당황스러워져서 표현하기 어려운 색깔 푸른빛에 잿빛 섞인 바탕이라고나 할까 색 바랜 똥색 테두리의 액자를 뉘어 놓고 쌓인 먼지를 입으로 풀풀 불어 내고는 외눈 박힌 도깨비 손에 든 빗자루로 탁탁 털어냈다 대청마루 섬돌, 마당 한 귀퉁이에 절구통이 놓여있다 녹색 페인트 듬성듬성 벗겨진 대문에 붙어있는 담장 쇠창살을 타고 긴 얼굴을 가장 슬프게 한 삐쩍 마른 수세미 하나가 손대면 바스락 부서질 것 같은 잎사귀 몇 장에 얽히어 걸려있다 전봇대 거미줄 같이 엉킨 전깃줄에서 용케 뻗어 나온 한 ..

2021.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