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95

박산 2026. 5. 23. 09:40

2026년 5월 15일 '문학의 집 서울'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95 (2026. 05. 29)

 

종로구인사동길52번지 인사14

//(02)720 6264

 

< ‘6시 정각 시작’, 귀간 시간 고려 30분 앞당겨졌습니다>

 

295 낭송예정자:

        유재호 김명중 김화연 김중열 조철암

        이윤철 조순일 선경님 김경영 박산

        

 

'다랑쉬굴 詩魂祭' 중 고현심 시인에게 시집에 서명하시는 생자

 

생자 이야기5

 

생자의 서명 ㅡ

 

생면부지의 생자의 독자들은, 가까운 도심에서부터 때론 먼 섬에서까지, 인사동 진흠모모꼬지에 생자를 찾아와 시집을 내밀어 서명을 받는다.

 

생자는, 시집 바다(공간)에 섬을 그린다, 떨리는 손으로 쥔 펜은 굵고 얇은 선으로 적당히 배분하면서 파도를 긋고 배를 띄운다, 주 서명은 한문으로(종종 한글로도 쓰신다) '李生珍'을 선 굵은 서예체로 완성하시고는, 오늘 날짜와 서명 장소를 쓰신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나는, 생자께 슬쩍 말을 얹습니다,

 

"선생님 갈매기 몇 마리 날게 하시지요?"

 

이 말에 생자께서는, 별말씀 없이,

 

눕힌 꺽쇠 기호 같은 갈매기를,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익숙한 원근법으로 작고 크게

어느새 섬 바다 하늘에는 끼룩끼룩 갈매기들이 난다.

 

 

294 단체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94 (2026. 04. 24)스케치

 

(294 모꼬지는 아래와 같은 시들을 낭송했습니다, 5문학의집·서울』 「그립습니다 이생진!특집으로 ‘294’ 시 원고 게재는 생략합니다)

김중열 님으로부터 그림 증정 받는 박산 (294)

 

1. 서시: 윤동주/김미희 낭송

2. 동백꽃: 이생진/유재호 낭송

3. 퇴근길: 김중열

4. 또 봄이야!: 선경님

5. 섬에 물이 차면 바람은 파도를 부른다: 조순일

6. 천생연분: 김하연 시/ 김미희 낭송

7. : 조철암

8. 어머니의 아리랑: 황금찬/ 낭송 김경영

9. 공친 날 화가 난 사람들: 박 산 

 

 

5 15 3 문학의집·서울』 「그립습니다 이생진!」】

 

진행을 보시는 나호열 시인
형님! 하고 외치시는 윤주홍 님
'아내와 나 사이' 퍼포먼스(윤준경 시인)
'이생진의 독백'을 낭송하는 조철암 님
생자의 시 노래를 부르는 현승엽 가수

 

이 행사를 주관한 나호열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순서는, 생자의 고향 서산에서 오신 박만진 시인의 생자 회고와 생자의 고향 절친 후배이신 봉천동 슈바이처 윤주홍 선생의 형님!” 하고 외치는 애절함이 있었고, 노희정 시인의 추모사와, 평소 가까이 지내셨던 윤준경 시인의 감동적인 퍼포먼스 아내와 나 사이, 조철암 낭송가의 '이생진의 독백'에 이어, 현승엽 가수가 부르는 생자의 노래들과, 생자가 거처하셨던 도봉구의 많은 문우 님들과 멀리서 찾아오신 독자님들이 많았습니다. 마무리로 "됐어! 바다가 보이면 됐어!, 됐어! 바다가 보이면 됐어!"로 모두 함께 생자를 향해 외쳤습니다.

 

생자의 섬 여행(김연선 사진가)

 

박산의 생자 추모 기조 연설문은 이렇습니다;

 

남산 문학의 집· 서울 20265153

 

그립습니다, 이생진 시인

박산: 기조연설

 

 

안녕하십니까?

 

이 자리에는 저를 모르시는 분들이 계셔서 제 소개부터 드립니다.

 

저는 인사동에서 스무 해 넘어 생자 이생진 시인을 모시고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를 진행했던

그리고 지금도 진행하는 박산입니다.

 

진흠모는 생자의 맨 끝 자 보배 에 공경할 을 넣어 지은

생자 이생진 시인을 흠모하는 모꼬지의 약자입니다.

 

2000년부터 26년째. 지난달 424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294회를 진행했습니다.

 

평소 생자 이생진 선생님과 가까이 지내셨던,

박희진 시인께서는 신안 앞바다 만재도를 세상에 알렸다 해서

만재라 부르셨고

 

임보 시인께서는 걸어 다니는 부처가 되어 시를 쓰신다

하셔서 고불이라 하셨는데,

 

정작 이생진 시인께서는 스스로 공자 맹자 한비자보다 더 많이 살고 있다는 의미로, 生子를 쓰셔서 생자라 자칭하시니,

 

그를 따르는 후학들은, 실제 생자의 생신은 1929년 기사생 음력 2월 스무하룻날이지만, 시로 축하하는 생자의 시 생일 잔치를,

매년 유월로 정해, 미수, 구순을 비롯하여 매년 시로 축하하는 잔치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생자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아마 생자께서는 지금도 하늘 구름 섬을 여기저기 다니시며 시를 쓰고 계실 듯합니다,

왜냐하면 생자께서는, 이승의 서울 한복판 인사동을, 역시 시로 파도를 부르고 등대를 지어 인사섬으로 만드셔서 현재 열두 해째

전국의 진흠모님들이 원고로 참여하는 무크지 인사도를 발행하게 하셨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불과 2~3년 전에도, 생자께서 잦은 섬 여행과 하루 15000보 걷기를 고집 실천하셔서,

 

생자 선생님의 건강이 걱정이 된 제가, “선생님 이제는 댁 근방 한 5~6천보 만 걸으시지요?” 고언을 드렸더니 하시는 말씀이

 

 

이 사람아! 난 말이야, 섬을 걸으며 시 쓰다가 가는 게 바람이야!”

하셨습니다.

 

생자 선생님 인사도인사동 나들이 마지막 모습 알려드리겠습니다,

 

2025829진흠모286회 모꼬지에 참석하시어 당신의 시,

 

1:이생진(*생자께서 인사동에서 마지막으로 읽은 시)

 

사노라면

웃음보다

울음이 많으니

참기 힘들면

를 쓰라

시로 태어난 서러움은

아무리

눈물을 뭉쳐놔도

아름다우니

 

 

생자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로, 이리 읽으시고는,

언제나 그랬듯이,

당신의 18번 노래 칠갑산을 열창하시고,

인사동을 마지막 떠나는 날,

 

인사동도 그의 마지막 걸음을 알았던지,

모꼬지 장소인 시가연을 나와

제자 이원옥 님이 차로 기다리고 있는 인사동 4거리까지,

불과 200m 걸어가는 길에, 어찌나 태풍 같은 비바람이

생자와의 이별 인사를 슬프게 하던지,

 

저기 앉아 계시는 김경영 님을 비롯하여 생자를 배웅하는 일행 모두 온몸이 흠뻑 비에 젖었어도,

항시 진흠모님들의 생자를 배웅하는 일은 기뻤고 악천후의 이 마지막 인사동 배웅, 그날도 기뻤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다음 달 919일 새벽 6시에, 하늘 섬 소풍을 떠나셨습니다.

 

 

워낙 걷기를 좋아하시는 생자 선생님,

그는 시를 발로 쓰셨던 분입니다.

 

영어 교사였던 생자께, 중학교 시절, 저는 그에게 A B C D 영어를 배웠고

그 배움으로 영어를 쓰는 해외 영업을 직업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저런 잦은 출장 때문인지, 운명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는 내게,

막걸리 모시는 자리에서

생자께서는 종종 영어로,

“Reading with your feet is a real Journey and,,, Poem!.”

발로하는 독서가 진정한 여행이고 그리고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매년 봄이면 저는 생자를 따라서 제주도를 갑니다,

그가 안 계신 지난달 4월에도 갔습니다,

 

그가 시로 스무 해 넘어 이루어 놓은 이제는 지역의 공적인 행사가 된 다랑쉬굴 詩魂祭를 지내고,

 

또한,

이제는 올레꾼들의 제주 올레 1길 시작 필수 코스가 된,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성산 일출봉 아래 오정개 해안,

내비게이션을 통해서 독자들이 찾아가는 이생진 시비 거리에는

국내외 많은 관광객들이,

시가 태평양을 향해 시비로 누워있는 이생진 시비 거리에서 열아홉 개의 시비에 쓰인 시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를 음미하며, 성산 일출봉 아래 태평양의 파도를 바라봅니다..

 

원래 이 봄에는 이생진 시인과 함께하는 성산포 시 낭송 모꼬지가 열려야 하는데

2026년 올해에는, 제주도 주관으로, 제주 명예 도민이기도 하신, 생자의 1주기 추모 행사를

919일 생자가 소풍 떠난 날을 기려, 이생진 시비 거리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사실 생자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으나 주어진 시간이 있으니 여기서 줄이기로 하고,

 

문학의 집, 서울에서, 이렇게 생자를 기리는 자리를 마련해 주신 나호열 시인과 문학의 집, 서울관계자 여러분께도,

진흠모의 한 사람으로서,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실 여기 문학의 집, 서울역시 2007, 제가 생자 선생님 모시고 당시에 막 인터넷 방송들이 시를 읽기 시작했을 때, 생자 초청 낭송 방송이었습니다, 이날 김후란 시인께서 생자를 소개하시길 시인들이 존경하는 시인이란 말을 듣고, 이후 제가 글이나 모꼬지에서 생자를 언급할 시에는 시인들이 존경하는 시인이란 문장을 사용했습니다.

 

 

끝으로 생자가 시로 키운, 원단 사업가 출신의 시 낭송가이며 시를 쓰시는, 조철암 낭송가를 청해,

그가 낭송하여 알리는 시, ‘이생진의 독백을 청하며 저는 이만 내려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생진의 독백-박산/조철암 낭송

 

저는 스스로 자연 시인이고/제 시도 자연산이라고 생각합니다./온상에서 길러진 화초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이지요./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쳐 그 혹독한 가난에도 문학을 했습니다./시를 썼습니다./힘든 거야 말로 다 하겠습니까./문학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다가/결국 고독을 찾기로 했고/고독의 질()이 으뜸인을 찾아다니며/실컷 외로워 보자 했었습니다.

 

저처럼 운명적으로 시와 예술에 빠진 사람이 누굴까 생각하다가/황진이 김삿갓(김병연)과 고흐를 불러내 오랜 대화를 하다가/대원각의 자야를 불러내 내가 백석이 되어얘기를 나누었지요./

 

시는 고독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좋아하거든요./앞으로도 대화할 사람들이 많아요./음악과 철학 시와의 만남 가령 니체와 바그너도..../

 

제 고향은 바다가 가까운 서산입니다./중학교 1학년 때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했고/일제강점기라 해양 훈련도 받았습니다./

 

16살 때 부친이 장티푸스로 돌아가시고/두 살짜리 막내를 비롯하여 5남매를 키워야 하는/우리 어머니는 살길이 막막했습니다./그때부터 제 삶은 어두울 수밖에 없었습니다./꿈이나 가정이나 청춘 사랑 따위의 따뜻한 단어들이/시골 바닷가 소년에게서 일찌감치 사라졌지요./

 

교사가 되어서 시를 생각했고 쓰기 시작했습니다./1955년 등사판을 밀어 제 첫 시집산토끼를 출간했습니다./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위하여/당시 제가 재직하던 서산여고에서 서울 성남중학교로 올라왔습니다./서울에서 집 얻을 엄두도 못 내는 실정에서/학교 사택을 제공해주었던 성남중학교에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보성중학에서 명예퇴직을 한 1993년 저는 드디어 자유인에 더 가깝게 되었고/전쟁 중에 참전 군인으로 젊음을 보낸 제주도를 비롯한/회귀 본능으로 섬에 더 자주 가게 되었지요./어릴 적부터 멀리 건너편에 바라보이던 섬들에 대한 끊임없는 궁금증을 시로 실현하기 위해..../

 

아직도 찾아가고픈 섬이 많습니다./새로운 섬이 아니라 이제까지 찾아다닌 섬 중에서/시 쓰기 좋은 섬을 자주 찾아가고 싶습니다./그곳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시 쓰기 좋은 섬입니다./만재도 우이도 여서도 손죽도 등입니다./만재도 하면 우럭을 잡아 매운탕을 끓여주던 윤 생각이 나고/우이도 하면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가지고 다니며 읽던 한 가 생각나고./여서도 하면 불행하게 생을 마친 김만옥 시인이 생각나고/최근에는 저와 여러 섬 여행을 많이 다녔던 지리산 벗, 손대기 도 생각납니다./옛날엔 동백꽃이 진하게 보였는데/이젠 자연 그대로 섬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섬 주인공 얼굴들이 보고 싶습니다./가고 싶네요./여든을 살았습니다/구십을 살았습니다/살아보니 80에 안 보이던 것들이 90,/이제야 보이기 시작합니다/인사진흠모에서 미수 잔치도 했고/구순 잔치도 했는데/올 아흔일곱이 됐습니다/박산이 말하는 이런 작은 잔치/ 사실/ 이제는/싫지 않네요!/아직도 읽을 책이 많고/써야 할 시가 너무 많은데 말입니다/여러분 많이 걸으세요!/부디 아흔을 넘어 사세요!/아무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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