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패

박산 2026. 1. 5. 16:19

영등포역의 빛과 명암(박산 찍음)

 

문패 -

 

 

1964년 노량진역 앞

 

야트막한 산등성이 우리 동네

 

 

열심히 미장일 다니시던 경배 아버지가

 

고만고만한 집들이 올망졸망 붙어 있는 골목 어귀에

 

코딱지만 한 방 두 칸에 쪽마루 겸 부엌 붙은

 

무허가 집 한 채를 사서

 

한문으로 쓰인 나무 문패를

 

녹슨 철대문에 걸고는

 

고사떡에 돼지머리 삶아

 

아랫집 윗집 옆집 다 불러

 

"진천 촌놈이 서울 하늘 아래

 

내 이름 석 자 문패 걸었으니 이제 부러울 게 없씨유!"

 

세상 다 얻은 표정으로 기뻐하였다

 

 

강산이 여섯 번 바뀐 21세기

 

일흔에 변두리 후진 아파트 사는 나는

 

이름 석 자 문패도 못 걸고 사는 신세다

 

 

말 잘 섞고 인사 잘해 알고 지내는

 

한 쉰은 넘었을 우리 아파트 남성 청소원은

 

아침이면 환한 웃음으로 말을 건네는데

 

볼 때마다 사장님!”이라고 불러

 

큰맘 먹고 나 사장 아닌데요했더니

 

"2403호 어르신!"

 

꼰대 냄새 나는 어르신은 더 싫은데....

 

囚刑 번호 부르듯 2403호에 어르신은 무신?

 

문패 달고 살 팔자도 아니니

 

가슴에 박산이름표라도 달까  

 

 

시집 《가엾은 영감태기》 중

 

소싯적 한 때는,,,
천안문 광장에서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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