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패 -
1964년 노량진역 앞
야트막한 산등성이 우리 동네
열심히 미장일 다니시던 경배 아버지가
고만고만한 집들이 올망졸망 붙어 있는 골목 어귀에
코딱지만 한 방 두 칸에 쪽마루 겸 부엌 붙은
무허가 집 한 채를 사서
한문으로 쓰인 나무 문패를
녹슨 철대문에 걸고는
고사떡에 돼지머리 삶아
아랫집 윗집 옆집 다 불러
"진천 촌놈이 서울 하늘 아래
내 이름 석 자 문패 걸었으니 이제 부러울 게 없씨유!"
세상 다 얻은 표정으로 기뻐하였다
강산이 여섯 번 바뀐 21세기
일흔에 변두리 후진 아파트 사는 나는
이름 석 자 문패도 못 걸고 사는 신세다
말 잘 섞고 인사 잘해 알고 지내는
한 쉰은 넘었을 우리 아파트 남성 청소원은
아침이면 환한 웃음으로 말을 건네는데
볼 때마다 “사장님!”이라고 불러
큰맘 먹고 “나 사장 아닌데요” 했더니
"2403호 어르신!"
꼰대 냄새 나는 어르신은 더 싫은데....
囚刑 번호 부르듯 2403호에 어르신은 무신?
문패 달고 살 팔자도 아니니
가슴에 ‘박산’ 이름표라도 달까
시집 《가엾은 영감태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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