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꼬락서닐 알아야지

박산 2024. 6. 1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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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꼬락서닐 알아야지 -

 

올 쉰일곱 은퇴 코앞인 경철씨

봉급쟁이 마누라로

애들 키우랴 알뜰 살림하랴

눈가 잔주름 쪼글쪼글

예뻤던 손등 푸른 심줄이 금을 그었는데

 

그 손에 쥔 장바닥 싼티 가방이

어찌나 싼티를 더하는지

마침 만기된 보험료

쌓인 이자 찾아가라는 통지 받고

에라 이참에 마누라 명품 가방 하나 사주자

모처럼 통 크게 마음먹고

Bottega, 프라다, Gucci, Cartier, Tiffany, 베네통…‥

목에 힘 빳빳하게 주고

백화점 명품 코너를 걸었다

 

눈에 별이 켜진 마누라

삼십 년 결혼 생활에

이리 살판 난 얼굴 보긴 처음이다

익숙하게 고르는 모습이

저게 내 마누라 맞나순간 낯설었다

 

어정쩡하게 팔짱 끼고 딴청 부리던 경철 씨

이쪽 저쪽 실실거리다

거리에서 흔히 보는 무늬 가방 하나 집어

이리저리 헤집다 가격표를 보았다

‘ 0 하나가 더 붙었나? ’

 

눈 비벼 다시 보았다

옆에 가방을 들어 보니

그건 또 첫 번째 숫자 끗발이 더 높다

보험료 이자론 어림 반푼쭝도 없다

입 찢어진 마누라를 뒤로하고

애써 태연한 척 카드를 긁었지만

경철 씨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내 꼬락서닐 알아야지

 

 

* 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중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