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꼬락서닐 알아야지 -
올 쉰일곱 은퇴 코앞인 경철씨
봉급쟁이 마누라로
애들 키우랴 알뜰 살림하랴
눈가 잔주름 쪼글쪼글
예뻤던 손등 푸른 심줄이 금을 그었는데
그 손에 쥔 장바닥 싼티 가방이
어찌나 싼티를 더하는지
마침 만기된 보험료
쌓인 이자 찾아가라는 통지 받고
‘에라 이참에 마누라 명품 가방 하나 사주자’
모처럼 통 크게 마음먹고
Bottega, 프라다, Gucci, Cartier, Tiffany, 베네통…‥
목에 힘 빳빳하게 주고
백화점 명품 코너를 걸었다
눈에 별이 켜진 마누라
삼십 년 결혼 생활에
이리 살판 난 얼굴 보긴 처음이다
익숙하게 고르는 모습이
‘저게 내 마누라 맞나’ 순간 낯설었다
어정쩡하게 팔짱 끼고 딴청 부리던 경철 씨
이쪽 저쪽 실실거리다
거리에서 흔히 보는 무늬 가방 하나 집어
이리저리 헤집다 가격표를 보았다
‘ 0 하나가 더 붙었나? ’
눈 비벼 다시 보았다
옆에 가방을 들어 보니
그건 또 첫 번째 숫자 끗발이 더 높다
보험료 이자론 어림 반푼쭝도 없다
입 찢어진 마누라를 뒤로하고
애써 태연한 척 카드를 긁었지만
경철 씨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내 꼬락서닐 알아야지’
* 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중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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