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술

박산 2024. 5. 5. 07:12

2024 봄 오사카 구로몬시장 지하도 이른 아침 이자카야에서

 

아침 술 ㅡ

 

아침 이른 시간 오사카 구로몬시장

활기찬 생선가게들 하릴없이 구경하다가

지하철 타려 인근 지하상가를 지나는데

갑자기 시끌벅적한 이자카야를 발견해

호기심 발동으로 들어갔다

 

혼술 혹은 두서너 명이 앉고 서 있는

남녀 불문 나이 불문 술꾼들로 꽉 찬

뿌연 담배 연기에 점령된 해방구다

 

침묵의 철학자 얼굴로 사케를 마시고

하이볼 한 모금에 담배 연기로 시를 쓰고

귀에 자주 드는 소리, 나마비루 구다사이!

조명 흐린 후미진 구석 자리에는 연애로 엉겨붙고

 

'아니 이 시간에 이런 술판이?'

 

하이볼 군침에 한자리 끼려 서성거리다가

담배 연기에 질식할 것 같아 나왔다

 

술에 열심이었던 플라톤부터 셰익스피어

내가 좋아하는 조선의 권필 김삿갓에

고흐에 헤밍웨이까지

새삼 거창한 인류의 술꾼들이 떠올랐다 ;

 

 

엊저녁 먹다 남긴 맛탱이 간 와인을

식구들 모두 나간 아침 시간

FM 음악을 틀어놓고

베란다 밖 일상을 구경하며

홀짝홀짝 마시는 일이

소소한 행복이라는 여인을 안다

 

지금은 허풍선이가 된 체력으로 술에 쫀쫀해진 내 신세가 싫긴 하지만

 

나의 주 무대인 종로 송해거리에도

시 쓰고 철학하고 연애하는  

아침 대폿집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술집은 다행히 실내 금연이다)

 

허허로운 날 아침에는

술 매너 일류인 독거노인 승엽이 불러

자잘구레한 얘기 안주로 술 한잔 나누게

 

송해거리 호프집에서 벗 현승엽 가수, 이덕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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