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술 ㅡ
아침 이른 시간 오사카 구로몬시장
활기찬 생선가게들 하릴없이 구경하다가
지하철 타려 인근 지하상가를 지나는데
갑자기 시끌벅적한 이자카야를 발견해
호기심 발동으로 들어갔다
혼술 혹은 두서너 명이 앉고 서 있는
남녀 불문 나이 불문 술꾼들로 꽉 찬
뿌연 담배 연기에 점령된 해방구다
침묵의 철학자 얼굴로 사케를 마시고
하이볼 한 모금에 담배 연기로 시를 쓰고
귀에 자주 드는 소리, 나마비루 구다사이!
조명 흐린 후미진 구석 자리에는 연애로 엉겨붙고…
'아니 이 시간에 이런 술판이?'
하이볼 군침에 한자리 끼려 서성거리다가
담배 연기에 질식할 것 같아 나왔다
술에 열심이었던 플라톤부터 셰익스피어
내가 좋아하는 조선의 권필 김삿갓에
고흐에 헤밍웨이까지
새삼 거창한 인류의 술꾼들이 떠올랐다 ;
엊저녁 먹다 남긴 맛탱이 간 와인을
식구들 모두 나간 아침 시간
FM 음악을 틀어놓고
베란다 밖 일상을 구경하며
홀짝홀짝 마시는 일이
소소한 행복이라는 여인을 안다
지금은 허풍선이가 된 체력으로 술에 쫀쫀해진 내 신세가 싫긴 하지만
나의 주 무대인 종로 송해거리에도
시 쓰고 철학하고 연애하는
아침 대폿집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술집은 다행히 실내 금연이다)
허허로운 날 아침에는
술 매너 일류인 독거노인 승엽이 불러
자잘구레한 얘기 안주로 술 한잔 나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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