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쉬

박산 2023. 3. 7. 08:44

생자 이생진 시인과 다랑쉬에서, 2008(김소양 찍음)

 

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중, 2011 우리글》

 

다랑쉬 -

 

묻은 게 있거든

툭툭 털어 예 다 내려놓으시게나

 

소리 지를 일 있으면

예서 크게 지르시게나

 

망할 자식 하나 있으면

예서 쌍욕 씨부렁씨부렁 하시게나

 

속내 깊이 썩고 있는 시름 있으면

예서 실컷 읊조리게나

 

마누라 몰래 사랑하는 이 있거든

이때다 하고 예서 한 번 슬쩍 불러 보시게나     

    

그러다 허기져 먹고 혹여 남은 게 있거든

나도 먹게 예 조금 내려놓고 가시게나

 

내려가실 때는 제발

횡 하니 쌀쌀맞게 등만 보이지 말고 

예 몇 번 고개 돌려 바라보고 아쉬운 듯 가시게나

그래야 예 다랑쉬 좋은 줄 알 것 아닌가 

 

 

 

* 다랑쉬: 월랑봉. 북제주군 구좌읍에 있는 봉우리, 다랑쉬오름

 

 

 

生子 이생진 시인을 따라가는 봄 섬 여행 중에서도, 많은 독자들이 생자 시인을 기억하게 해주는 제주도는 특별하다, 성산포 일출봉 아래 우도가 바라보이는 올레 1이생진시비거리가 있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그러하고 서귀포 칠십리길을 노래한 이중섭거리와 외돌개 소나무 숲이 또한 그렇고, 시로 연주하는 한 편의 굿거리 마당인 구좌의 다랑쉬굴 詩魂祭가 그렇다. 2008년으로 기억되는 봄날, 할미꽃 무장다리꽃이 여기저기 피어있고 고사리가 목을 빳빳이 세우고 있는 아끈다랑쉬오름 돌무덤가에 모여 제주와 서울에서 내려 간 문학애호가들이 즉흥 글짓기 대회를 진행했다, 이때 생자와 동행했던 고 박희진 시인(1931~2015)께서 오늘의 장원이라 뽑아준 시가 바로 이 시, 다랑쉬」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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