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신도림역 까치

박산 2022. 3. 1. 10:30

신도림역 (인터넷 발췌)

 

시집 《'노량진 극장' 중, 2008 우리글》

 

유쾌한 신도림역 까치 - 

 

나는

교류 25000 볼트가 흐르는

1호선 신도림역 상공에 거주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곡예사다


시커멓게 그을린 깃털을 움츠리고

도림천변 다리 밑에 썩고 있는

나의 종족을 종종 본다
그래도 나는 고압선 사이를 날아다니며

들고나는 전동차와 벌이는

아슬아슬한 유희가 좋다

그가 종일 쏟아내는

플랫폼 사람들 표정이 울고 웃고 너무 재미있다

한가한 대낮

전철 맨 뒷문 앞 예쁜 여자 스커트자락 밑동

흘린 새우깡 부스러기를 주워 먹다

엉큼하다 발로 내 치인 적도 있다

움찔 놀란 척

날 생각도 안하고 뒷걸음질 쳤지만

실제 놀란 건 아니다

50 센티미터도 안 되게 가까이 가 보았자

정신 놓은 사람들은 아는 척도 안한다

그래도 먹을 것 있는 냥

바닥에 부리를 찍으며

"나 좀 보라" 한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취객 사라진

전철 끊긴 한밤중 신도림역은 재미없다

역사驛舍 위 콘크리트 고가도로 이음새 사이

얼기설기 나뭇가지 엮은 둥지에 들어

난 꾸벅꾸벅 잔다

 

새벽 첫차 들어오는 소리에

게슴츠레 뜬 눈으로

타고 내리는 종종걸음의 인간들을 본다

아침 찬 공기 둥지 속 날갯짓 기지개

순간 "으쌰 !"

신도림역 상공을 날아본다

 

역사 아침은

인파로 터질 듯 반복되어 분주하지만

내겐 볼거리 많은 일용 텔레비전이다


오늘도 나는 유쾌한 신도림역 까치다

 

:

누군가 삶이 너무 무료하면 신도림역을 가보라 했다.

인파에 떠밀려 내려가고 올라가는 혼 빠지는 환승역이지만

오고가는 이 하나하나 표정을 보면 의외로 무미건조하다.

도림천변 위 신도림역에는, 까치가 역사 위 고가도로 밑에 둥지를 트고

전철 고압선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날아다니며 살고 있다

고압선도 무섭지 않은 놈이 사람인들 무섭겠나,

가만 보면, 승강장에서 종종 거리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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