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노량진 극장 중, 2008 우리글≫
「소풍 끝낸 풍경」
불알이 어찌 생겼는지조차 잘 아는 친구가 죽어
장례식에 갔어요
죽은 이유는 말 안 할래요
병으로 죽었건 무엇으로 죽었건
소풍 끝낸 건 다 마찬가지니까요
좀 더 같이 놀지 못하고 성질 급해 먼저 간 빙신 같은 놈
말해 더 무엇 하겠어요
그래도 살아생전 오랜 세월 죽여
죽어라 같이 다닌 정리情理가
그게 아니거든요
문상객이 많던 적던
조화가 많던 적던
부조금이 많던 적던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같이 놀던 친구들이야 쓴 소주 한 잔에
눈물 고인 짠한 마음으로 ‘잘 가라’ 할 밖에
그런데 말입니다
화장터 불구덩이 방향으로 자리 잡은 방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검은 리본 두른
내 친구 놈 얼굴 사진은
제법 근엄한 척 합니다
진즉에 혼 빠진 관 속 제 육신은 바로 앞에서 활활 태워지고 있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금방이라도 말 걸어 올 것 같은 친하고 익숙한 얼굴
새삼 눈 맞추어 쳐다보았지요
마음속으로 한 번 더 ‘이놈아! 잘 가라’ 하는데
갑자기 낄낄거리며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피식피식 나오는 거에요
그 영정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거 에요
산 놈이 거긴 왜 들어가 있는지
그것도 모자라 들어있는 내 얼굴도
제법 근엄한 척 하는 게
내가 날 더러 ‘쟤가 왜 저러지’ 했지만
검은 리본이 제법 어울리기까지 하는 거에요
헛헛한 웃음이 사라지는 순간
‘이렇게 죽는 거와 친해지는구나!’ 깨달았지요
그래서 화장터 구경도 할 만해요
어디 안 죽는 사람 있나요
소풍 끝낸 친구 덕에 별 경험을 다 해 보았지요
새삼 사는 게 고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