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음光陰

박산 2021. 8. 11. 07:45

게리 번트(Gary Bunt, 1957~)

영국 켄트주 출신 화가, 시인. 음악 밴드 기타리스트, 건설현장 노동자 등 다양한 직업 전전. 마약과 알코올 중독 등을 겪었다. 자기치료와 성찰의 ‘사색적 여정’을 그림으로 그린다.


시집《무야의 푸른 샛별, 2015 황금알》



광음光陰  ㅡ

습濕한 은둔 속
꿈틀대던 작은 벌레 한 마리
용케도 새의 먹이가 되지 않고
몸통에 날개를 달았다

숲을 떠났다

아집我執에 취해 만든 목표
허공에서 높이 날 생각만 했다
억지웃음에 호들갑을 떨었고
내가 벌레였음을 잊었다

그때가 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날개 힘 빠지던 무렵
잦은 눈물을 흘릴 그때다
회한悔恨 따위의 자학의 습관들
날갯짓이 슬프다

가만가만 다시 기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백랍의 날개보다는
퇴화退化가 더 좋다
난 이카로스가 아니다

땅 내음에 오래된 고향이 들어있다
조상님 같은 들어본 듯한 노랫소리가
역시 싫지 않은 박자를 타고 논다

조류도 못되어 본 곤충
다시 벌레 되어 꿈틀거리다
요만큼만 가고
요만큼만 먹고
빛 둘에 그늘 여덟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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