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국화-
공지천 소묘 -
가을이 덜미를 움켜쥔 잔잔한 호숫가에 앉았다
나무가 뱉어낸 옅은 신음으로 나뭇잎들이 붉다
뻗어나가는 줄만 알았던 것들이 여기 와서 쉬는 중인데
물만 먹어도 배부른 물고기가 공연히 펄떡이다
가만히 서있는 척 음흉한 왜가리 긴 주둥이에 걸렸다
물 한 모금 못 마신 내 배도 불러왔다
저만치 산 아래 도로를 휘익 지나는 자동차가 한가롭고
한 떼의 늙음을 모시고 소풍 나온 보호사 아줌니들은
무심한 휠체어 바퀴를 따라 구르고 있다
물가 가시박 넝쿨 속에는 뱁새 몇 마리 분주하지만
백조를 가장한 플라스틱 놀이 배는 한가로이 떠다니고
벤치에 포갠 연인들의 긴 입맞춤도 급할 게 없다
강과 바다를 모르는 호수는 행복하다
(2017 가을 춘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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